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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2 01:17
<웹진4호 지역협력기관 소식6: 상담사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975  

아범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말어라. 사람들이 들으면 자식이 부모 명줄 줄이겠다고 오해하겠더라.

- 부산웰다잉문화연구소 상담사례

글쓴이 : 정경호

 

"바쁜데 또 왔나?" "오늘은 좀 나으세요?" "응 그래, 잘 왔다, 니 이거 쫌 어서 풀어 바라. 내가 통 깝깝해서 몬 살겠다. 나를 환자라 칸다 아이가. 이기 무슨 꼴이고?" "그러세요? 오늘도 치료 잘 받으셨죠?" 풀어드리자 마자 '에이' 하시면서 확 빼버린다. 집사람이 하는 말, "또 팔천 원 떡 사먹었네요." 하지만 나는 더 염려가 된다. 아버지가 당장은 시원해하실지 몰라도 곧 내가 집에 가고 나면 또 한 번 병원이 떠나갈 정도의 비명이 메아리 칠 것이란 걸. 코를 통해서 고무호스를 또 넣어야 하는 그 괴로움의 비명을 나는 끝내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간호사에게 내가 저만치 병원 일층을 내려갈 즈음에 시작해 주십사 부탁을 매번 드린다.

 

 

 

병원을 쩌렁쩌렁하던 고함이 속삭임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느 날 담당의사로부터 말을 들었다. 계속해서 산소포화도가 떨어진다고. 산소마스크도 해야 하고, 항생제도 고단위로 투여해야 한다고. 나는 연명의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제부터는 더 이상 다른 것들(의료행위들)을 하지 말아주시면 고맙겠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아범아 그게 무슨 말이고?" "어머니, 이제부터는 아버지에게 다른 치료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고? 아범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말어라. 사람들이 들으면 자식이 부모 명줄 줄이겠다고 나서는 그런 꼴이 되는 거 아이가." "엄마, 오빠가 알아서 한답니다." 동생들도 조금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 후, 2015년 5월 초파일을 이틀 앞두고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아스라한 여운으로 점점이 흩어졌다.

 

 

 

2013년 여름, 그해는 참 덥고도 시원한 여름이었다. 장모님께서 뇌졸중으로 누우시고 그해 여름에 웰다잉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어서 연명의료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장모님 부산 정서방입니다." "자네 왔는가. 힘들틴게 푹 쉬게나. 글고 맛나는 저녁 먹소." 당신 사위 중에서도 첫 사위로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끝내 말씀을 놓지 않으시던 장모님. 두어 달 전 그날도 몇 해 전 아버지에게 부착된 장비나 다름없는 그런 장치만이 쉼 없이 규칙적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의사가 나직이 말했다. 오랫동안 누워계셨기 때문에 심폐소생술 도중에 갈비뼈 부상도 우려된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냥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아주세요'라고만 했다. 아내와 처제에게는 재작년 아버지의 사례를 들면서 이미 이야기를 해 둔 터였다. 그렇게 4년간을 걸음 한 걸음 없이, 당신 스스로 몸 한번 뒤척여보지 못하시고, 사위 사랑, 손주 사랑 표현 하시는 억센 사투리 한마디 못해보시고 2017년 3월 장모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다.

 

 

 

베레나 카스트는, 애도는 상실의 체험에 반드시 필요한 정신과정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애도의 과정에서, 연명의료에 대한 나의 일천한 소견으로 상실의 계기를 부여하는 또 다른 애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프로이트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로부터 애도는 정상적인 반응으로, 우울증은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설명했다. 여기서 애도과정의 성공여부는 아마도 삶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에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의 애도는 이것으로 성공적인가. "아범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말어라, 사람들이 들으면 자식이 부모 명줄 줄이겠다고 오해하겠더라." 어머니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기회가 되면 이 소리를 해야겠다. “의사선생님, 이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모님! 그 새콤달콤 맛나던 오징어무침, 귀하디귀한 사위가 가는 날만은 온 정성으로 버무려 주시던 그 오징어무침, 이번 주말에 집 사람에게 해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어이 그려그려, 어서 어서 먹소, 먹소'하시던 말씀, 귓가에 아른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