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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권근영의 문화노트]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권근영 문화부 기자
“AI에게 물어봤어요. 내가 몇 살까지 살 것 같냐. 그런데 답을 안 해주더라고. 몇 세기가 지나도 ‘이건 김윤신이야’ 할 만한 걸 만들어 놓고 가야죠.”
지난 10일 더 중앙 플러스 ‘아트토크: 마스터스’에서 대담을 나눈 김윤신(91). 고령의 현역 조각가는 담담하게 죽음을 얘기했다. 1935년 원산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해방을 맞고 6·25를 겪은 그는 “살아남았으니 뭐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이끌어 온 동력”이라고 말했다. 작업과 결혼한 그의 곁은 김란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장을 비롯한 제자들이 수십 년째 든든히 지키고 있다.
교수직을 버리고 49세에 떠난 아르헨티나에서 40년간 작품활동을 했다. 김윤신은 거기 묫자리도 마련해 뒀지만 2024년 영구귀국하면서 한국에서의 마지막을 새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일하다가 그냥 숨이 끊어지는 게 소원이에요. 제자들의 도움으로 오늘날까지 왔는데, 죽을 때까지 신세를 지면 안 되죠. 내 장례는 미리 준비할 작정이에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름난 예술가만의 화두는 아니다. 전날인 9일 찾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모친상 빈소엔 작은 전시가 꾸며졌다. ‘고(故) 신영전 권사 유작전-아파트 주간 보호센타에서 제작한 작품’이라고 제목도 써 붙였다. 고인이 9년간 아파트 주간 보호센터에서 만든 종이 작업 10여 점이 걸렸다.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 일찍 결혼해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한 어머니는 주간 보호센터가 학교 같다고 좋아하셨다”라고 유 관장은 전했다.

국밥 먹는 조문객들 뒤편으로 색색의 그림이 붙었다. 장독 안에 새우·무·파 등 고인이 좋아하는 식재료를 오려 넣은 그림(사진), 여름 참외와 수박, 열매 열린 가을 나무에 날아드는 고추잠자리, 잘 익은 사과 한 광주리를 그린 그림이다. 99세로 세상을 뜬 고인의 그림엔 무채색 하나 없이 생의 긍정이 가득했다.
한가운데 걸린 초상화는 이종구(71) 작품. 이종구는 양곡 부대에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농민 화가다. 청와대에 걸린 노무현 대통령 초상화도 그의 작품이다. 초상화 아래엔 생전에 차남의 아파트에서 전시를 열며 찍은 가족사진도 붙였다. 빈소엔 주로 상주를 위로하러 갔는데, 거기선 고인이 보였다. 죽음이 한 인생의 마침표라면, 이런 마침표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나는,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권근영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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