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 원예지 기자
- 업데이트 2026.09.20 21:11
책 사랑한 어린 시절 마음으로
도서관법 개정·도서관 건립에 힘써
죽음준비교육 통해 존엄사 인식 확산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에도 힘 보태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우리는 죽음에 대해 준비하지도 않고 살아갑니다.” 홍양희(신문방송학과 67학번)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이하 ‘사실모’) 고문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평생 책을 사랑해 온 그는 기자 생활을 거쳐 지역 도서관 설립에 힘썼다. 이후 봉사를 이어가다 지인의 죽음을 계기로 웰다잉에 주목, 13년간 사실모 공동대표를 맡아 존엄사 문화 정착에 힘썼다. 지난 5월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하는 구술자서전 활동에 나섰다. “어르신들께서 삶을 돌아보며 ‘내가 참 열심히 잘 살았네, 참 고맙네’라고 말씀하세요. 자기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인정하는 시간은 남은 삶을 잘 살아가는 데도 중요합니다.”
엽전 한 닢이 심어준 신념
홍 고문은 전라남도 벌교의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시골에서의 유일한 오락은 독서였다. “철도 기관사였던 아버지께서 지방 근무 중에도 신문과 잡지를 꾸준히 구해 오셨어요. 덕분에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어린이잡지 ‘새벗’과 청소년잡지 ‘학원’을 자연스럽게 접했죠.” 책과 가까이 지낸 그는 특히 양녕대군의 일생을 다룬 작은 문고판 한 권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세종대왕의 맏형 양녕대군이 노비와 함께 전국을 유람하다 개울에 엽전 한 닢을 빠뜨렸는데, 그걸 마을 사람이 찾아준 이야기였어요. 양녕대군이 그에게 엽전 한 닢을 더 주며 ‘엽전을 찾는 사람이 조금 수고를 들이더라도 이를 다시 유통하면 나라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말한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나 하나의 수고를 무릅쓰고 전체에 이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홍 고문은 정의롭게 살고 싶은 마음에 법과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진로를 바꿨다. “아버지께서 열차를 운행하실 때면 지방 신문 기자들이 기자 신분증을 내세워 무임승차를 요구했다고 해요. 기자들과의 관계나 조직 내 분위기 때문에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어 힘들어하셨죠. 그런 부당한 기자들을 대체하는 정의로운 기자가 되라고 하셨어요.”
1967년, 홍 고문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개설 3년 차였던 학과는 교육 체계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전문적인 언론 공부를 기대했지만 학과가 과도기라 깊이 배우지 못해 아쉬웠어요. 그래도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기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죠.”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신문사 시험을 봤다. 1971년, 홍 고문은 전남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에 배치된 그는 가정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사를 맡았다. “당시 여성 기자가 적고 정치부 등 일부 부서는 남성 중심으로 운영됐어요. 자연스럽게 문화부에 가서 여성·가정 쪽 기사를 썼죠.”
책과 사람 향한 관심, 도서관법 개정으로 이어지다
1973년 4월, 홍 고문은 결혼을 위해 기자 생활을 관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던 만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독서를 권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살던 동네에는 아이들과 함께 갈 공공도서관이 없었고, 그는 직접 건립을 결심했다. “아이들에게 소공녀나 로빈슨 크루소 같은 책을 읽히고 싶었어요. 도서관이 없으니 남편에게 직접 만들자고 했죠. 이왕이면 도서관에 제가 사서로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는 곧장 성균관대 사서교육원 야간 과정에 등록했다. 수업을 들으며 도서관의 역할도 고민하게 됐다. “대학원에서 우리나라 도서관법이 지나치게 낙후돼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국내 도서관은 해외처럼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의 공부방에 머물러 있었던 거죠. 도서관을 바꾸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어요.”
정책을 바꾸는 일에 관심을 가진 홍 고문은 선배의 추천을 계기로 1984년 김현자 의원의 보좌관이 됐다. 연세대 행정대학원 언론홍보과정에도 발을 들인 그는 국회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며 도서관법의 문제점을 적극 전달했다. “국회에서 도서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던 터라 제 말에 흥미를 느끼셨어요. 문제가 확실해 의원님과 함께 개정 준비를 시작했죠.” 갖은 노력 끝에 1987년, 도서관법이 제정 이래 처음으로 전부개정됐다. 도서관 운영의 전문성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사서 자격을 세분화하고 도서관진흥기금을 설치하는 기반이 생긴 것이다.
이듬해 홍 고문은 대학원 과정과 보좌관 생활을 동시에 마쳤다. 이번에 관심을 둔 것은 자원봉사. 그는 한국 최초의 민간 자원봉사단체인 각당복지재단의 초대 총무를 맡아 봉사자 양성에 나섰다. “정책과 법을 만드는 국회를 떠나 사람과 직접 맞닿는 사회를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초대 총무로서 임종 간호 등 여러 분야의 자원봉사자를 양성하며 바쁘게 일했죠.”
이후 홍 고문은 거주하던 반포 한신타운 아파트 단지에 작은도서관을 세웠다. “단지 안 많은 주민들이 책을 기증해 주기도 하셨죠. 평소 소망을 주민들과 함께 이루게 돼 뜻깊었습니다.” 오랜 바람과 달리 그는 사서로 일하지 않았다. “정작 사서로 일하지는 않았지만, 일관된 관심사를 갖고 사는 것이 중요하단 걸 도서관을 지으며 깨달았어요. 작은도서관을 만들고 법 개정을 건의한 것 모두 책이라는 관심사에 기반해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결과죠.”
죽음을 잘 맞이하는 법을 알리다
홍 고문이 각당복지재단에서 활동하던 중,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이사장의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홍 고문은 이를 계기로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가까운 어른이 떠나니까 허무했어요. 누구나 쉽게 떠날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떠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을까 싶었죠.” 1990년 김 이사장이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를 창립하면서 그는 함께 죽음 준비에 대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창립 소식이 신문에 실리자 반발과 공감의 목소리가 엇갈렸지만, 이듬해 열린 창립 강연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는 자신의 뜻을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죽음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 일을 계속해 나가기로 마음먹었죠.”
홍 고문은 각당복지재단에서 죽음준비교육과 존엄사 지도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본격 운영하기 시작했다. “길은 처음부터 험난했어요. 국내에는 죽음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책도, 전담 교수도 거의 없었죠. 교수와 의료인, 법률가, 간호사 등을 직접 찾아 교육 강사진을 꾸렸어요.” 사람들은 죽음을 주제로 한 교육을 낯설어했다. “복지관을 찾아가 교육을 제안할 때마다 ‘죽기도 서러운데 무슨 죽음 얘기냐’는 냉대가 돌아오기 일쑤였어요. 당시에는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했죠.”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홍 고문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연극을 준비했다. 지인 연출가의 도움을 받아 존엄사 연극반을 꾸리고 ‘춤추는 할머니’, ‘립스틱 아빠’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이라는 재밌는 소재로 죽음을 다루니까 어르신들께서 편안하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죠.”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연명의료 중단과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했다. 당시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혀온 김 할머니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자 가족은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고,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평소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로 인해 연명의료 의사를 직접 남기는 문서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문의가 늘어나자 홍 고문은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에 적극 목소리를 냈다. 실천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려는 사회적 요구가 폭발적으로 커지자 전국에서 ‘나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만들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졌죠. 그분들이 자기 뜻을 미리 남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필요했어요.”
사실모는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명운동 등 활동을 이어왔다. 이후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마련됐지만 그는 여전히 편견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아직 죽음이 코앞에 오지도 않았는데 미리 써놓으면 재수 없는 거 아니냐’는 오해가 있어요. ‘60~70대나 할 일’이라는 편견도 여전하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놨다고 병원에서 치료를 안 해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존엄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방법이 될 수 있죠.”
사실모 대표직에서 물러난 홍 고문은 현재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를 거친 어르신들의 삶을 듣고 자서전으로 엮는 ‘구술자서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삶을 돌아보는 일은 결국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생각하는 일이기도 해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죠. 죽음은 슬프지만, 준비하고 나면 그 슬픔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저는 힘닿는 데까지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싶어요.”

기사원문 보러가기 https://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5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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