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의 죽음 이야기
찰스 앨런 길버트의 <모든 것이 헛되다>(All Is Vanity, 1902)는 바니타스(vanitas)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예술의 걸작입니다. 한 여성이 화장대 앞에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이 장면 전체가 해골로 보입니다. 작품의 제목 'vanity'는 화장대와 허영심의 이중적 의미를 담아냅니다. 1902년 라이프 잡지에 실리며 소비주의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폴 세잔의 <해골이 있는 정물화>(Still Life with Skull, 1895-1900) 역시 주목할 만한 바니타스 작품입니다. 정교한 붓 터치로 그려진 해골과 과일의 배치는 생명의 일시성과 죽음의 필연성을 암시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유행한 바니타스 정물화는 라틴어로 '헛됨'을 의미합니다. 이 그림들은 당시 식민지 무역으로 얻은 부와 풍요로움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죽음의 필연성을 상기시키는 상징물을 배치했습니다. ‘시간의 유한함’(모래시계), ‘생명의 덧없음’(비누 거품, 꺼져가는 촛불), ‘세속적 부와 권력의 무의미’(금은보화, 왕관), ‘지식의 한계’(책, 지구의), ‘삶의 즐거움 이면의 허무’(악기, 그림, 트럼프), ‘죽음의 불가피성’(해골, 투구, 창)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호스피스 전문가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대표 저서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에서 부제목, “죽어가는 사람이 의사, 간호사, 성직자 그리고 가족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에 주목하게 됩니다. 죽음에 대응하는 원리로 “우리가 죽어가는 환자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꼽습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과의 대화로 쓴 이 책은 죽음의 실재성과 함께 희망이 공존하는 생의 마지막 단계를 보여줍니다. 죽음을 성찰하는 시간은 삶의 진정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게 하고,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좀 더 진실한 삶을 추구하며, 생명을 대하는 자세나 사람들과의 관계, 오늘이라는 시간을 소중하게 살아야 함을 알려줍니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야기합니다. 인공지능과 첨단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존재합니다.
바니타스 예술이 보여주듯,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는 것은 오히려 현재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고 진정한 가치에 집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박인조 작가>
※ 이 글의 집필자인 박인조 작가는 사실모 상담사이며, 사실모 협력기관인 (재)에덴낙원(https://www.edenparadise.co.kr) 감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