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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0만 명의 선택: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성과와 다음 단계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이후 우리 사회는 삶의 마무리에 대해 보다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생애말기를 숙고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제도가 정착되면서 연명의료 중단 이행 건수는 꾸준히 늘어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제도 운영 과정에서 드러난 한계를 보완하고, 환자의 뜻이 의료현장에서 보다 온전히 구현되도록 제도를 한 걸음 더 성숙시켜야 할 시점이다.
2. 거부 의향 84.1% vs. 실제 중단 16.7%: 환자선호와 의료현실의 괴리
65세 이상 고령층의 84.1%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시행되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거부 의향을 밝혔으나, 실제 65세 이상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친다. 이는 적지 않은 고령 환자가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임종 직전까지 연명의료 시술을 경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3. 매년 6.4% 증가하는 연명의료 환자: 연명의료 결정 전(全) 과정의 복합적 문제
연명의료 환자수는 2013~2023년 중 연평균 6.4%씩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증가는 인구 고령화라는 추세적인 요인약 60% 기여 외에도, 연명의료 결정 전 과정[사전 논의 → 의료기관 선택 → 임종기 판정 → 중단 이후 돌봄]에 걸쳐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제도적·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① 사전 논의 단계
- 죽음에 대한 논의 부족: 죽음에 대한 논의를 기피하는 문화는 임종기 치료 방향을 사전에 문서화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져, 환자의 평소 의사가 가족과 의료진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죽음에 대한 대화 부재는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인식 저하의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 개인 의사표현의 제약: 자체 설문조사 결과, 연명의료 결정 과정에서 개인의 구체적 선호를 세분화해 반영하려는 수요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현행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의료 중단 여부만 일괄 선택하는 구조여서, 환자마다 다른 가치관과 개별 시술에 대한 세부 선호를 담기 어렵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상담·작성·등록할 수 있는 기관이 종합병원,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등 일부 기관으로 한정되어 있고, 원칙적으로 이들 지정 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하므로,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이나 시간 제약이 큰 직장인에게는 접근성측면에서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한다.
② 의료기관 선택 단계
- 의료기관윤리위원회·공용윤리위원회 접근성 제한: 현행 제도상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주로 수도권의 상급종합병원과 일부 대형병원에 설치되어 있어, 중소병원·요양병원의 설치 비율은 매우 낮다. 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공용윤리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으나, 전국 13개 위원회가 약 200개 위탁 의료기관을 소수 인력으로 담당하면서 인력·예산 부담이 크다. 그 결과 지방중소병원·요양병원에서는 환자와 가족이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실질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③ 임종기 판정 단계
- 임종기 판정의 어려움: 현행법은 ‘회생이 불가능하고 임종이 임박한 상태’로 정의되는 ‘임종기’에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한다. 그러나 대부분 질환에서는 임종 시점을 의학적으로 예측하기 어렵고, 임종기 여부에 대한 판단도 상당 부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에게도 연명의료 시술이 계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임종 1개월 내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를 보면, 약 40%는 임종 직전 1주일 이내가 되어서야 중단이 결정되었고, 이들은 그 한 달 동안 평균 6.8개의 연명의료 시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④ 연명의료 중단 이후 돌봄 단계
- 생애말기 돌봄 인프라 부족: 연명의료 중단 이후 환자를 지원할 생애말기 돌봄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 2025년 기준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103개소에 그치고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 간 접근성 격차가 크다. 그 결과 호스피스 이용을 희망하는 비율 91%과 실제 이용률암 사망자의 23%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한다. 이는 환자와 가족이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하고 호스피스·완화의료 등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4. 환자의 고통과 가족의 부담, 그리고 지속가능성
환자 의사와 괴리된 연명의료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사회 전체에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① 환자의 신체적 고통 수반
연명의료는 상당한 신체적 고통을 동반한다. 본 보고서에서 산출한‘연명의료 고통지수’에 따르면, 연명의료 환자의 평균 신체적 고통은 단일 질환이나 단일 시술에서 경험하는 최대 통증의 약 3.5배에 이른다. 연명의료 고통지수 상위 20%에 해당하는 환자가 겪는 고통은 이보다 훨씬 큰 약 12.7배 수준에 달해,고강도 시술이 집중된 특정 환자군이 매우 극심한 신체적 부담을 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② 환자와 가족의 경제적 부담 확대
연명의료 환자가 임종 전 1년간 지출하는 의료비, 이른바‘생애말기 의료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으며, 가계의 연간 소득과 순자산을 고려할 때 특히 취약 계층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연명의료 환자 1인당 평균 생애말기 의료비 건강보험부담금을 제외한 본인부담금는 2013년 547만원에서 2023년 1,088만원으로 연평균 7.2%씩 늘어 약 2배가 되었으며,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약 40% 수준에 달한다. 소득 하위 계층의 소득은 이보다 훨씬 낮아, 생애말기 의료비가 저소득·저자산 가구에 특히 큰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환자 가족은 의료비 외에도간병에 따른 직간접비용 간병인 고용, 휴직·퇴직 등으로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겪을 수 있다.
③ 생애말기 의료체계의 구조적 불균형 심화
우리 사회는 환자 의사와 무관한 연명의료에 의료자원이 투입되는 가운데, 수요가 높은 생애말기 돌봄 서비스에는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구조적 불균형’에 직면해 있다. 현 추세가 지속되면 이러한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반대로 연명의료가 환자 의사에 보다 부합하는 수준에서 시행된다면, 연명의료에 투입되던 건강보험 재원을 비롯한 사회적 의료자원의 일부를 호스피스·완화의료, 간병지원 등 수요가 높은 생애말기 돌봄에 재배치할 수 있다. 아울러 환자·가족 역시 연명의료에 지출하던 본인부담금 일부를 생애말기 돌봄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는 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을 설계하고, 생애말기 돌봄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5. 연명의료결정제도 보완방안
이상의 진단을 토대로, 본 보고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네 가지 제도 보완 방향을 제안한다.
① 대국민 홍보 강화와 제도 참여 경로의 확대
생애주기별 맞춤 홍보·교육을 통해 국민이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취지와 절차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에게는 건강검진 항목 확대나 건강보험료 인하와 같은 실질적 혜택을 부여하는 인센티브도 검토할 수 있다. 아울러 평소 이용하는 동네 병·의원에서 의료인과 상담하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등록하고, 온라인 등 디지털 채널을 통해서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 기반을 정비한다면 제도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② ‘개인화’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한 환자의 자기결정권 강화
환자의 구체적 선호와 가치관을 의료현장에 더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보다‘개인화’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서식 도입이 필요하다. 새 서식에는 ① 법정 연명의료 시술에 대한 선택적 거부, ② 현행 법정 연명의료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생명유지와 밀접한 인공영양공급에 대한 의사, ③ 장기기증 의사, ④ 의료결정 대리인 지정 항목이 포함된다. 또한, 임종 장소·돌봄 방식 등 ‘희망사항’을 자유롭게 서술하는 공간을 두어, 생애말기 과정을 미리 숙고하고 개인 선호를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다만 장기기증 의향, 인공영양공급 중단 등은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이미 법정 연명의료로 규정된 시술별 선택 항목부터 현행 서식에 단계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③ 제도 사각지대 및 이행시점 문제 해소
중소병원과 요양병원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에서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한 채 의사 표현이 불가능해진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환자가 평소 신뢰하는 사람을 사전에 지정하는「의료결정 대리인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점차 정착되고 있는 만큼, 현재 ‘임종기’로 한정된 연명의료 중단 이행시점을 조정할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 볼 수 있다.
④ 연명의료 중단 이후의 돌봄의 연속성 확보
연명의료 중단이 단절된 의료행위로 끝나지 않도록, 중단 이후 완화의료·심리상담·가족지원 등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생애말기 돌봄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을 확충하고, 이들 기관과 일반 의료기관 간 협력·정보공유 체계를 정비하여, 환자가 적절한 기관과 서비스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6. 결론 및 향후 과제
연명의료 제도 개선의 목표는 연명의료 자체를 줄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삶의 마무리 방식을 미리 충분히 숙고할 수 있도록 돕고, 그에 대한 자기결정이 마지막까지 존중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 향후 연명의료 논의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생명존중의 가치와의 조화를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또한, 보고서에서 직접 다루지 못하였으나,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의 생애말기 의료 문제 역시 향후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첨부 : 전체 보고서 [제2025-38호]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환자 선호와 의료현실의 괴리, 그리고 보완방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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