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서울대 의대 교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 인터뷰
죽음과 가까이 지내며 오히려 삶의 소중함 깨달아
열심히 살아온 인생 위해서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일년에 한 번씩 유언장 작성하며 삶을 돌아보게 돼
스스로 ‘이만하면 괜찮은 삶’ 말할 수 있는 인생 살길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조심스럽고도 깊은 화두다. 현대의학은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삶의 질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항암치료 등 연명의료는 때때로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을 더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결국 ‘어떻게 잘 살고, 잘 죽을 것인가’라는 성찰로 이어진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미리 돌아보는 사람만이 오늘을 더욱 충실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
"네 살배기 아이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비혼모의 눈가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보는 순간,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20여 년간 수천 구의 시신을 부검해 온 법의학자 유성호 서울대 의대 교수의 고백이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부검대 앞에 서는 그의 일상은 죽음을 직시하면서 동시에 삶을 성찰하는 철학적 시간이다.
국내 부검의가 40여 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으로 활동하는 유 교수는 최근 저서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노트’에서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하나의 깨달음”이라 말한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웰다잉’과 깊이 맞닿아 있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의사가 오히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는 역설이 궁금해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 죽음을 다루는 직업이 오히려 삶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왜 웰다잉을 강조하시나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마지막 경험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신의 끝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삶을 마무리합니다. 광활한 우주 속 티끌만 한 지구에서, 우리는 아주 잠깐 머물다 가는 존재입니다. 저는 수많은 죽음을 마주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깊었습니다. 삶을 정리할 시간조차 없었던 죽음을 목격할 때마다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 잊히지 않는 죽음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화재 현장에서 아이를 구하려다 숨진 비혼모의 부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분은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입양과 파양을 두 번이나 겪었고, 어렵게 혼자 아이를 낳아 성실하게 살아가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이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눈가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보았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지금도 그분이 평안하길 기도합니다.
– 어떤 죽음은 ‘호상’이라 불리고, 어떤 죽음은 쓸쓸하게 기억됩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죽음은 본질적으로 혼자 맞이하는 것이지만, 발견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방치된 ‘고독사’는 깊은 참혹함을 남깁니다. 농촌 지역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의 사례를 보면 더욱 안타깝습니다. 심하게 부패한 시신을 마주할 때, 그 뒤에 숨어 있는 단절과 외로움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반면 가족과 충분히 이별하며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었다”고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죽음은 평온하게 다가옵니다.

–법의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의대에 들어왔을 땐 의사가 당연히 살아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직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본과 4학년 때 우연히 듣게 된 법의학 강의가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단순한 의학 지식을 넘어 정의와 인권을 지키는 사명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고인의 죽음을 통해 사회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을 밝히는 일, 그것이 제게 의사로서의 책임이자 소명이었습니다.
–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나요?
▶최근엔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유족이 늘고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고인과의 정서적 단절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과거엔 “마지막 순간만큼은 지켜주겠다”는 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홀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이는 가족 내부의 일로만 볼 수 없으며,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조력존엄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 최근 조력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점점 활발합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1955년부터 1983년 사이에 태어난 약 2300만명이 곧 노년기에 접어듭니다. 이들이 맞이할 의료와 돌봄 문제는 중대한 사회적 과제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조력존엄사 논의는 피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도 도입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찬반 이분법이 아니라 오랜 기간 신중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우선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가 제도적·문화적으로 충분히 준비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 매년 유언장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유언장을 죽음을 위한 문서로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삶을 돌아보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98세에 생을 마감한다’고 가정하고 써보는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미련 없이 정리하고 싶은 것, 남기고 싶은 말, 지키고 싶은 사람들…. 그런 생각들을 적다 보면 삶의 우선순위가 선명해집니다. 저는 살아 있는 동안 누구나 유언장을 한 번쯤 써보길 권합니다.
–교수님이 생각하는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존엄한 죽음이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만하면 괜찮았다”고 받아들이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마지막 인사를 충분히 나누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름답고 존엄한 마무리일 것입니다.

◆유성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모교에서 법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법의학 교육과 연구에 힘써왔다. 현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으로 활동 중이며 20년 넘는 세월 동안 약 3000건의 부검과 자문을 맡아왔다. KBS2 시사·교양 프로그램 ‘스모킹건’에서는 범죄 현장을 바라보는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대중과도 소통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가 있다.
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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