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됐다. 그동안 3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삶의 마지막에 대한 의사를 미리 남겼고, 수십만 건의 연명의료 결정이 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 하지만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금,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청년의사는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10년을 맞아 제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다음 10년의 과제를 3회에 걸쳐 짚어봤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됐다. 지난 10년은 환자 자기결정권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도 안에 정착시키는 시간이었다. 300만명이 넘는 국민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고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의료 현장의 일상적인 절차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이 오히려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제도의 양적 확대를 넘어 실제 환자의 삶과 죽음을 뒷받침하는 돌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 이중규 공공보건정책관은 최근 청년의사와 만나 “지난 10년이 자기결정권을 제도화한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10년은 국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의료와 돌봄 체계를 완성하는 시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명의료 중단은 포기가 아니라 또 다른 선택”
이 정책관은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의 가장 큰 의미로 의료 현장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그는 “과거에는 환자를 끝까지 치료하는 것이 곧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후) 모든 연명의료가 반드시 환자에게 최선은 아니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환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삶의 마지막을 결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실제 제도에 대한 국민 인지도와 참여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현재 340만명을 넘어섰다. 연명의료결정제도 인지도 역시 지난 2019년 74%에서 2024년 88.7%까지 높아졌다.
이 정책관은 “국민들이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알고 자신의 의사를 미리 표현하려는 문화가 확산된 것은 분명한 성과”라며 “죽음과 생애말기에 대한 논의를 사회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자기결정 비율 32%→50%…“환자 중심으로 변화”
정부가 지난 10년의 성과로 특히 주목하는 지표는 환자 자기결정 비율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연명의료결정제도를 통해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사람은 약 8만명이다. 이 가운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본인의 의사가 직접 확인된 사례가 절반을 넘어섰다.
제도 시행 초기인 2018년 자기결정 비율이 32%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 정책관은 “과거에는 가족 진술이나 가족 합의를 통한 결정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환자 스스로 결정하는 비율이 절반 이상으로 올라왔다”며 “연명의료결정법이 추구했던 자기결정권 보장이라는 목표가 의료 현장에서 점차 구현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상당수는 가족 진술이나 합의에 의존하고 있다”며 “환자 본인의 의사가 더욱 명확하게 확인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급한 과제, 요양병원 참여”…인프라가 제도 못 따라가
하지만 제도 성장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정부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는 곳은 요양병원이다. 현재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대부분 연명의료결정제도에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 많은 노인 환자가 머무는 요양병원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설치와 운영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 정책관은 “국민들은 제도를 알고 활용하고 싶어 하지만 의료기관이 이를 수행할 기반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특히 요양병원은 연명의료결정이 필요한 환자가 많음에도 제도 적용 기반이 부족한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복지부는 우선 공용의료기관윤리위원회 확대를 추진해 최근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등 2곳을 추가해 15곳을 운영 중이며 향후 추가 지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앞으로는 제도 참여 기관 수를 늘리는 것보다 실제 환자들이 어디에서든 연명의료결정을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종기에서 말기로…사회적 논의 시작
정부가 다음 단계 과제로 제시한 또 다른 핵심은 적용 시기 확대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기에 있는 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이미 임종이 임박한 시점에야 논의가 시작돼 환자와 가족이 충분한 숙고 시간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에 대해 이 정책관은 “현 제도는 임종기에 국한돼 있어 환자가 사실상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까워졌을 때 논의가 시작되는 구조”라며 “말기 단계부터 연명의료계획을 논의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말기 확대는 단순히 법을 개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돌봄 인프라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환자가 연명의료를 선택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ACP 확대·온라인 의향서 도입 검토
복지부는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 ACP) 확대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 이 정책관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연명의료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문서라면 ACP는 생애말기 의료와 돌봄 전반을 계획하는 과정”이라며 “환자와 가족, 의료진이 충분히 대화하고 준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의료진 교육과 상담 프로토콜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방식 개선을 위해 온라인 등록 시스템 도입도 검토 중이다.
그는 “온라인 도입은 등록자 수를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의 질을 표준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누구나 동일한 설명을 듣고 충분히 이해한 뒤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초고령사회, 이제는 ‘돌봄’의 문제
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제도의 미래를 의료가 아닌 돌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정책관은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다는 것이 치료를 포기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통증 관리, 심리사회적 지원, 완화의료, 재택의료 등 적절한 돌봄이 함께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연명의료에 사용되던 자원을 절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자원을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재택의료체계를 연명의료결정제도와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병원, 요양시설, 자택 어느 곳에 있더라도 생애말기 의료와 돌봄이 끊기지 않도록 지원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초고령사회와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의료대리인제도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이 정책관은 “무연고자나 가족과 단절된 환자들이 의사 결정 사각지대에 놓이는 문제는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며 “의료대리인제도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대리인 권한 범위와 이해충돌 방지 등 법적 쟁점이 많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10년은 양보다 질”
마지막으로 이 정책관은 연명의료결정제도의 현재를 묻는 질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10년 동안 제도에 대한 인식과 참여는 크게 늘었지만 이제부터는 실제 현장에서 환자의 의사가 존중받고 구현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의 10년은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질을 높이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명의료결정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환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죽음을 논의하는 사회적 문화, 의료진의 인식 변화, 돌봄 인프라 구축이 함께 이뤄질 때 비로소 제도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지난 10년 동안 환자 자기결정권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결정이 실제 의료와 돌봄 현장에서 구현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복지부가 말하는 다음 10년의 목표도 결국 여기에 맞춰져 있다. ‘연명의료 중단’이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삶의 마무리’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 그것이 연명의료결정제도가 향해가는 다음 단계다.
곽성순 기자 kss@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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