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호스피스·완화의료, 삶을 완성하는 디딤돌 5
호스피스·완화의료는 말기 환자들도 ‘잘 살기 위해’ 시행하는 의료다. 더욱 본질적으론 좋은 죽음에 앞서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말기 환자와 함께하는 생명운동이자 문화운동이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여러 오해를 바로잡고 생명운동으로서의 문화와 인식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건강한겨레에 월 1회 칼럼을 기고한다. 편집자 주
질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마지막 순간과 마주한다. 마라톤에 피날레가 있듯,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도 끝은 있다. 우리는 치료받을 권리에는 익숙하다. 더 좋은 약을 쓰고, 더 정교한 수술을 받고, 더 오래 살아갈 가능성을 넓히는 일에 사회적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정작 삶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자주 침묵한다. 더는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순간, 한 사람이 고통을 덜고 존엄을 지키며 삶을 마무리할 권리는 과연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36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그 보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미쳐야 하지 않겠는가.
호스피스 외래 진료실에 앉아 있으면, 처음 찾아오신 환자들이 들고 오는 두꺼운 차트를 마주하게 된다. 그 안에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이 넘는 투병의 시간이 담겨 있다. 수술, 항암치료, 재발, 다시 치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한 사람과 한 가족이 견뎌온 시간이 읽힌다. 얼마나 많은 병실을 거쳤을까, 얼마나 많은 의료진을 만났을까 생각하다 보면 문득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쩌면 나는 그분들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의사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순간 의료는 단지 병을 고치는 기술이 아니라, 한 인간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많은 환자들은 수도권의 대형병원에서 오랜 시간 암 치료를 받다가 더 이상 완치 목적의 치료가 어려워지면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 시간을 준비한다. 그런데 그 마지막을 맡길 수 있는 호스피스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다. 특히 서울처럼 대형병원이 밀집한 곳에서도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입원형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곳은 드물고, 다수는 자문형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환자와 가족은 치료의 단계에서는 거대한 의료체계 안에 있었지만, 삶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선택지가 줄어드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호스피스는 흔히 ‘더는 할 것이 없는 의료’로 오해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보건복지부가 설명하듯 호스피스·완화의료는 통증과 신체 증상을 조절하고, 돌봄 계획을 세우며, 임종을 준비하고, 환자와 가족을 교육하고, 심리·사회·영적 고통까지 함께 돌보는 포괄적 의료 서비스이다. 또한 연명의료결정법은 이러한 과정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호스피스는 치료의 포기가 아니라, 고통을 줄이고 존엄을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의료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필수적 돌봄이 여전히 병원과 현장 종사자의 헌신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입원형, 자문형, 가정형을 막론하고 호스피스는 충분한 인력과 공간,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낮은 수가와 취약한 재정 지원 때문에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병원 경영 측면에서는 호스피스 병상 대신 일반 중증 환자의 병상을 늘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지역의 공공의료를 책임지는 국립대학교병원 역시 수익성을 떠나 호스피스 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와 고민이 깊은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병원들의 이러한 고충은 환자들이 존엄한 임종을 맞이할 권리가 점차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실제 병동과 지역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예산과 인력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호스피스는 국가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필수의료 영역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호스피스 관련 사업 예산은 타 의료 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수준이다. 특히 다른 국가 지정 의료 사업들과 달리, 호스피스는 지자체의 예산 매칭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지역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진료 수가 역시 현장 의료진의 인건비조차 충당하기 버거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누구에게나 가족의 생애 말기를 곁에서 돌본 기억이 있거나, 언젠가 그런 시간을 통과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고통과 외로움은 우리 사회가 함께 덜어줄 수 있다. 국민이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매듭지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정책적 배려와 함께 각 지자체의 제도적 자원 투입이 조화롭게 맞물려야 한다. 생의 마지막을 여정은 개인과 병원의 노력만으로 온전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함께 모여야 한다. 존엄한 죽음은 환자의 의연함, 가족의 사랑, 의료진의 온기에 국가의 책임 있는 제도가 더해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원문기사보러가기 https://www.hani.co.kr/arti/hanihealth/healthcolumn/12654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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