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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마이라이프]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2026-04-23 11:37:09
    관리자
    조회수   154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웰다잉] 사전연명의료의향서

     

    (AI 생성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한국죽음학회의 모토는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어떤 태도로 맞이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맞이하는 죽음’은 준비에서 시작된다. 흔히 ‘웰다잉(Well-dying)’이라고 부르는 죽음 준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임종 과정에서 회복 가능성이 없을 경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본인의 의사를 미리 문서로 남겨두는 제도다. 다음 두 사건을 계기로 이 제도가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먼저 1997년의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술에 취해 쓰러진 남성이 병원에 입원했다. 비용부담을 느낀 부인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퇴원했다. 귀가 후 그는 사망했다. 법원은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퇴원시킨 의사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했다. 이 판결 이후 의료 현장은 크게 위축됐다. 의사들은 법적 책임을 우려해 연명의료 중단에 극도로 신중해졌고, 그 결과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들까지 중환자실에서 장기간 연명치료를 받는 일이 흔해졌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 됐다.

    이 흐름을 바꾼 것이 2008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있었던 ‘김 할머니 사건’이다. 폐렴 증세로 입원해 폐조직 검사 중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자 환자의 가족은 “의식이 없을 경우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생전의 뜻을 근거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소송을 제기했다. 환자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더 의미 있는 사실은 연명치료를 중단한 뒤에도 김 할머니가 약 2년을 더 사셨다는 점이다. 연명치료 중단이 반드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논의가 본격화돼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이른바 ‘웰다잉법’이 제정됐다. 이후 2018년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제도 덕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다.

    필자 역시 2018년에 의향서를 작성했다. 같은 해 친정어머니도 함께 작성하셨다. 그 선택의 의미를 절실히 느낀 순간이 바로 응급실의 밤이었다. 어머니는 91세 생일에 낙상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지 몇 주 만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다시 응급실로 옮겨졌다. 집중치료가 이어져 어머니 몸에는 열 개가 넘는 주사와 관을 연결했다.

     

     

     

    한숨 돌린 뒤, 젊은 의사에게 어머니가 이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셨음을 알렸다. 그때 돌아온 말은 “그럼 왜 응급실에 오셨어요?”였다. 뜻밖의 말에 순간 말을 잇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만약 평소에 아무 준비가 없었다면, 그 혼란스러운 순간에 전혀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어머니의 뜻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은 생명을 무조건 붙잡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뜻을 지켜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명치료는 종종 가족보다 환자 본인에게 더 큰 고통이 된다. 삽관과 인공영양 장치가 연결된 상태에서는 의식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진통제나 수면제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 시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2025년 12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약 320만 명 이다. 이중 60세 이상 인구의 약 86.7%에 이른다. 2025년 송파 지역의 한 경로당을 방문했을 때도 어르신 대부분이 이미 의향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이건 꼭 해야 한다”는 경로당 회장의 말에는 자식을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과거에는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뜻을 수첩에 적어 다니거나 ‘DNR(Do Not Resuscitate)’ 문신을 몸에 새긴 사례도 있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 없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한 장이면 충분하다.

    삶을 준비하듯 죽음을 준비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치료를 포기한 채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더 존엄하게 살기 위한 선택이다. 혹시 아직 이 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했다면, 의식이 온전한 지금 꼭 작성하길 바란다.

    언젠가 누구나 마주하게 될 마지막 순간을 위해 오늘 한 장의 의향서를 준비해두는 일. 그 작은 준비가 훗날 나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한애경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명예교수bravo@etoday.co.kr

     

    기사원문보러가기  https://bravo.etoday.co.kr/view/atc_view/18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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