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여행·입시·노후에 다양한 계획을 세우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삶의 마지막 순간 ‘외면’
죽음 정면으로 응시할때 ‘후회 없는 오늘’
“난 굴욕스러운 고통 속에 죽진 않을 거야.” 영화 ‘더 룸 넥스트 도어’(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2024) 속 말기 암 환자 마사의 의지는 결연하다. 친구 잉그리드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 영화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인간의 존엄과 우정,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집중한다. 그래서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삶은 더 선명해진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삶을 화려한 색감의 미장센으로 표현한다. 죽음은 흑백이 아니라고, 삶과 죽음은 문 하나 사이를 둔 방처럼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면 계획을 세운다. 숙소를 예약하고 동선을 그린다. 혹시 모를 변수까지 예상해 시간표의 빈칸을 채워 넣는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 자체가 출발 전 설렘을 키우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비단 여행뿐만이 아니다. 입시를 위해 공부 계획표를 짜고,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수십 년 앞서 재정 설계를 고민한다. 중요한 일일수록 불확실성을 줄이고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이 본능이다. MBTI 성향 중 계획을 선호하는 이른바 ‘파워 J형’이 아니더라도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정작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삶의 마지막 장에 대해서는 계획을 좋아하는 이들조차 연필을 내려놓는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고 불길하게 여기는 문화적 관성 탓이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며 은퇴 후의 30년은 치열하게 걱정하면서도,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하지만 오히려 준비 없는 막연함은 더 큰 불안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진정한 웰다잉(Well-Dying)은 임종 직전의 비장한 의식이 아니다. 신체적·생리적 쇠락을 대비하는 단계를 넘어 정신적·사회적 준비를 포괄하는 삶의 필수 교양이다. 송양민·유경(2011)의 연구에 따르면, 체계적인 죽음준비교육을 접한 이들은 죽음에 대한 불안이 유의미하게 감소하고, 오히려 현재의 생활만족도와 삶의 의지가 강화된다고 한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역설적으로 오늘 일상의 밀도가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도구가 바로 ‘유언장’과 ‘묘비명’의 작성이다.
흔히 유언장을 재산을 나누는 법적 문서나 유산 상속 서류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본질은 자신의 가치관을 담는 ‘인생의 정리 노트’다. 유언장 전문과 작성일, 주소, 성명, 날인 등 법적 효력을 갖춘 명확한 정보를 기록해 두는 일은 남겨진 자들에 대한 성숙한 배려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묻는 묘비명 작성은 남은 생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된다. “자기보다 현명한 인재를 모으고자 노력했던 사나이 여기 잠들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은 ‘인재제일’ 경영 철학을 압축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동심여선(童心如仙·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에는 평생 어린이를 사랑한 마음이 함축돼 있다.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을 ‘소풍’으로 정의하며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눈부신 고백을 남겼다. 나만의 묘비명을 가슴에 품는 순간,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를 전하고 미뤄두었던 사과를 건네는 용기가 생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정의했듯, 죽음을 외면한 삶은 결코 온전해질 수 없다. 결국 웰다잉은 죽음을 준비하는 기술이 아니라, 오늘을 후회 없이 살아내기 위한 가장 품위 있는 삶의 전략이다. 잘 죽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아름답고 충실하게 채워나가기 위한 다짐이다.
영화 ‘더 룸 넥스트 도어’가 보여준 화려한 색감의 미장센처럼,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어두운 흑백의 세계가 아니다. 죽음은 그저 문 하나를 사이에 둔 방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삶의 완성이기도 하다. 미완의 인생 설계도에서 마지막 장을 차분히 그리는 것은 성찰의 시간이 된다. 죽음을 담담히 마주할 용기를 낼 때, 우리의 소풍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마침표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 ‘웰다잉’은 삶을 끝까지 사랑하는 ‘웰라이프’이기 때문이다.
/강희 논설위원
원문기사보러가기 https://www.kyeongin.com/article/1767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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