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한국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이야기.
글: 박소미
2026.07.01
오늘날 한국인의 75퍼센트 이상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1990년대 병원 사망 비율이 30퍼센트였음을 감안하면 우리의 죽음은 급격하게 의료화 되어온 셈이다. 그런데 생명을 살리는 일과 생애 말기 환자를 돌보는 일이 늘 같진 않다. 환자 의사와 무관한 연명치료를 떠올려 보자. 이런 불일치가 만들어낸 아득한 간극이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조력임종 찬성 여론이 80퍼센트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조력존엄사법’의 필요성을 말하는 건 매끄러운 전개처럼 보인다. 하지만 같은 결과를 두고 “한국 사회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재난에 가까운 생애 말기의 경험, 돌봄의 공백 속에서 맞닥뜨리는 절망과 두려움”(6쪽)을 읽어 내기는 쉽지 않다. 박혜윤 정신건강 전문의, 신성준 신장내과 전문의, 최은경 의료인문학 교수가 함께 쓴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은 사회적인 돌봄망이 부재한 가운데 죽음 역시 개인이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문제로 남겨진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의 출간 후기를 들려주세요.
오래전부터 조력임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주로 관련 학계 안에서 공부하고 논의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2022년 처음으로 국회에서 조력임종에 관한 입법이 시도되고, 2024년에는 ‘조력존엄사법’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법안이 발의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중한 검토나 연구,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 없이 다수가 찬성한다는 근거로 갑자기 조력임종이 도입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우려가 들었고, 많은 사람이 임종 현실에 절망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제 역할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학술 출판이나 강의로는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는 데 한계가 있겠다고 생각했고, 단순히 죽음을 도와주는 제도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묻는 조력임종에 대해 다양한 층위에서 숙고할 수 있는 단서들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주는 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감한 주제여서 원고를 쓸 때나 출간하고 나서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분께서 책에 관심을 보여주시고 잘 읽었다는 피드백을 주셔서 무척 놀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제목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은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세 분이 함께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책의 제목은 아몬드 출판사의 이은정 대표께서 제안하신 것입니다. 딱딱하고 직설적인 학술서 제목에 익숙하던 저에게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제목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최근 한국인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스위스에 가서 남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말끔하게 가고 싶다”는 소망을 “깨끗한 죽음”이라는 어구로, 꼭 이루고는 싶으나 현실에서 쉽게 실현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에 ‘환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부담주지 않고 고통받지 않고 죽고 싶다는 소망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자연스러운 바람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환상’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정말 가능한가”, “깨끗해야 좋은 죽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괜찮은 단어라고 생각하여 의견을 모아 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암과 신체질환을 갖고 있는 분들을 보는 정신과 의사이고, 신성준 선생님은 만성콩팥병 환자들을 보는 내과 의사, 최은경 선생님은 의료윤리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저자들은 분야는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의료윤리에 오래 관심을 기울여왔고 함께 정기적으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최은경 선생님이 책을 기획하고 있을 때 우연히 신성준 선생님께서 캐나다 연수 시절부터 꾸준히 조력임종에 대한 원고를 준비해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셋이 함께 집필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기획부터 원고 작성 및 검토, 대담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서로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분야가 완전히 다른 세 사람이 함께 고민하면서 하나의 책으로 내는 과정이 무척 어려웠는데, 출간 후 돌아보니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는 이 주제를 다루는 데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죽음을 ‘치료의 실패’로 인식하는 한국의 환경이 환자, 가족, 의료진 모두에게 압력으로 작용해 임종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금기시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며 ‘죽음’에 관한 생각의 변화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고 죽는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 주제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 보다 많은 사람, 특히 노인분들이 ‘나는 이렇게 죽고 싶다’는 말씀을 나누시는 것 같고, 미리 준비하는 마음으로 30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하신 듯합니다. 하지만 막상 가족 중 누군가가 중증질환에 걸리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말기 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금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다른 이야기는 함구하고,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서 치료 방안을 찾고 환자는 치료에 전념하고 의사들은 치료를 권유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치료도 중요하고, 가족과 환자의 불안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의 최선은 늘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만 집중돼야 하는 것일까요?
의료가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질병 상태를 회복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누가 잘못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치료에 대한 회의와 고민을 가족이나 담당의사와 나누지 못하는 환자를 드물지 않게 만납니다. 환자는 몸으로 악화된 상태를 느끼고 있는데, 누구와도 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외로워하기도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살피는 마음을 잘 간직한다면, 말기 또는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무거운 고민을 나누고 길을 찾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의사조력임종에 대한 한국의 “높은 찬성 여론이 생애 말기 경로가 재난처럼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나온 절박한 열망”(262쪽)일 수 있다고 짚어 주신 점이 인상적입니다. 의사조력임종을 논하며 우리 사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의사조력임종이 돌봄 체계의 공백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쉬운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조력임종을 반대한다면, 아프거나 질병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도록 우리 모두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잘 살기 위한 여건을 만드는 것은 조력임종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맺음말에서 최은경 선생님이 언급했지만 “죽음은 혼자 맞이하는 사건이 아니라, 곁에 있어 주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납니다. 조력임종을 그 관계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도입하려는 것인지, 고통을 피하는 기술이나 취약한 삶을 밀어내는 방법으로 사용될 우려는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며 호스피스와 같은 완화의료의 확대가 현실적으로 좀 더 시급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화의료의 확대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라 답변하기 조심스럽습니다만, 반드시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대목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큰 그림으로는, 법적 요건을 국제적 표준에 맞추어서 주요 중증 질환 환자들이 질병의 시기에 관계없이 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해야 합니다. 이러한 법적 요건의 확대가 실제 환자들의 완화의료 접근성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이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과 시설이 늘어나야 하는데, 이것은 인력 교육과 수련, 재원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의료기관이 수익을 내야 생존할 수 있고, 완화의료와 같이 검사나 술기보다 환자와의 소통과 돌봄 즉, 충분한 인력이 중요한 분야는 적자가 나는 구조에서는, 의료기관 스스로 이를 실행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정부에서 전향적인 정책 선회와 재원 투자를 하지 않는 이상 빠른 시일 내에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 의료에서 환자의 고통이 중심 주제가 된 적은 거의 없는데, 의사조력임종은 제도 자체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환자의 고통’에 주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267쪽) ‘환자의 고통’이 의료의 중심 의제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환자의 생명을 살리거나 연장하는 것 외에 고통을 돌보는 것도 의료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물론 생명을 살리거나 최대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료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하지만 지금 의료 현장은 그것에 매우 치우쳐 있습니다. 병원 하면 피검사와 CT, MRI로 대표되는 각종 검사들과 약물이나 수술, 시술 같은 처치들을 받은 경험이 떠오를 거예요. 특히 한국 의료는 검사나 처치를 신속하게 많은 양을 실행할 수 있도록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암을 치료받거나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환자는 어떠한 경험을 할까요? 수술과 항암 치료 이외에 다른 문제는 없을까요? 중환자실에서 계속 누워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는다면 어떨까요? 중증 질환을 치료받으면서 환자들은 통증, 체력저하, 숨쉬기 어려움, 식욕저하, 불면, 불안, 절망 등 다양한 괴로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잘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은 매우 빈약합니다.
의사조력임종을 받기 위해서는 이 괴로움이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의사의 평가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가 환자의 괴로움의 종류와 수준 그리고 치료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어야겠지요. 이 ‘평가’ 행위 자체가 현재 한국 의료에서는 매우 낯선 일입니다. 저는 이렇게 고통을 다루는 의료(지지의료 혹은 완화의료라고 부릅니다)가 보편적인 의료 서비스가 되는 일이 환자들의 삶과 임종의 질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며, 한편으로는 의사조력임종을 실행할 수 있는 선행 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함께 한 반려 [ _______ ]
방 밖에서는 저의 글쓰기를 조용히 응원해주는 남편과 딸, 방 안에서는 음악입니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음악을 들으면서 시동을 거는 편인데, 바흐의 피아노 연주곡이 가장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울라프손이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많이 들었습니다. 번잡한 생각으로 어지러운 뇌의 주의력을 모아서 쓰기에 몰입하게 해주는 데 효과가 좋아요. 더 이상 음악이 들리지 않으면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딸이 선물해준 손목 보호대 인형도 저의 반려 물건입니다.(웃음)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주중에는 병원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로 주말에 집에 있는 작은 서재방에서 글을 씁니다.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되어야 글을 쓸 수 있는데, 그런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늘 어려운 일입니다. 원고를 집중해서 쓰려고 하는 날에는 남편과 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에 오래 머무르려고 애씁니다. 숙고해서 글의 주요 내용이나 표현을 만들어야 하는 때에는 책상에 노트북과 노트, 펜, 핵심 참고문헌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편집을 하거나 참고문헌을 정리할 때에는 큰 모니터를 활용해서 작업하고요.
이번 책 출간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중서로는 처음이고,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책을 집필한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책을 읽은 독자분들이 어떻게 읽으셨는지, 어떤 생각을 하시게 됐는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블로그나 SNS에 후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 인터뷰도 저에게는 무척 놀랍고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번 주부터 북토크도 할 예정인데, 독자분들과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나는 것이라 긴장도 되고 설렙니다. 책을 통해 소통하는 일의 즐거움을 하나하나 경험해가고 있습니다.
작업 중 특히 인상 깊게 본 타인의 작품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죽음이라는 것을 개개인의 개별적인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보았다면, 시간이 갈수록 죽음의 관계성과 영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의 명상 지도자로 호스피스에도 종사했던 조안 할리팩스의 책 『죽음을 명상하다』, 『연민은 어떻게 삶을 고통에서 구하는가』와 유튜브 인터뷰, 완화의료 의사인 리비 샐노우가 2022년에 쓴 죽음의 가치에 대한 「랜싯(Lancet)」 보고서와 강의를 보면서, 제가 죽음을 개인적·의료적·정책적 관점으로만 보려는 시각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새로운 영감을 얻고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2025년 국제완화의료학회에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 임종을 맞는 환자들의 삶을 고민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샐노우의 강의를 듣고, 말기 문제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한국을 넘어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할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길이 잘 보이지 않는 현실을 고민할 때, 김탁환 작가의 『사랑과 혁명』을 읽으면서 19세기 우리 조상들은 그 참담한 시대에 어떠한 마음으로 교우촌을 만들고 지켰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에는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를 읽으면서 봄날의 지리산을 그려보고, 전업 작가님의 삶에서 자극을 받아 다시 자리에 앉기도 했어요.

돌봄 체계를 갖출 시간을 놓친 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사람들은 그 공백을 각자의 삶에서 직접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방법은 ‘통제 가능한 수단’을 찾는 것입니다. 지역 돌봄 체계 구축을 요구하는 것보다 의사에게 요청해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단순하고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261쪽)
글: 박소미
원문기사보러가기 https://ch.yes24.com/article/details/8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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