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박중철 당신의 마침표] 15_말기 돌봄 의료의 붕괴
“호스피스 입원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요? 대기가 두달이랍니다. 기다리다 죽겠네요.”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원으로 진료를 다녀온 보호자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환자는 두달 전부터 급격히 몸 상태가 기울었다. 식사도 거의 못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냈다. 일찍부터 호스피스 입원을 준비하자고 권유했지만 항암치료에 대한 미련이 남아 밥 대신 영양음료를 섭취하며 집에서 버텼다. 최근 통증도 더 심해져 매일 밤을 끙끙대며 지새웠다. 통증 상담을 위해 1주일 전 휠체어에 실려 온 환자의 모습을 보니 더욱 수척해져 여명이 길지 않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항암치료에 대한 미련과 집에서 버틸 생각일랑 그만 접고, 더 늦기 전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원으로 입원을 준비하자고 다독였다. 이때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여기는 왜 호스피스 병동이 없느냐는 것이다. 수년간 여기서 치료받았고, 모든 기록이 다 여기에 있는데 익숙한 곳을 두고 왜 다른 곳으로 입원해야 하느냐 묻는다. 할 말이 없다.
전국의 암환자들이 몰려드는 서울에는 대형 대학병원이 넘쳐난다. 서울 소재 의대는 서울, 연세, 고려, 이화, 경희, 한양, 성균관, 중앙, 가톨릭 등 9개이고 모두 1~3개의 종합병원을 서울에 가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제, 한림, 울산, 건국, 을지, 순천향 등은 학교는 지방이지만 모두 서울에 대학병원을 두고 있다. 이렇게 서울에 병원을 두고 있는 15개 의대 중 7곳은 어떤 호스피스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다. 단지 자문형 호스피스만 제공하는 데가 7곳이 있고, 입원형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는 데는 가톨릭대 하나뿐이다. 입원형이란 전문병동을 갖추고 말기 환자를 입원시켜 돌보는 호스피스의 형태다. 자문형이란 입원 병동 없이 다른 병원 호스피스로 전원을 안내하고, 증상 조절 등에 관한 조언만을 제공한다.
결국 인구 9백여만명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입원형 호스피스를 책임지는 곳은 시립병원을 비롯한 공공병원들이다. 참고로 서울의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14곳 가운데 공공병원이 8곳, 가톨릭재단 종교병원이 4곳, 민간병원이 2곳이다. 하지만 대학병원에 눈높이가 맞춰진 환자와 가족들은 공공병원과의 시설 차이를 들며 마지막까지 대학병원에 남기를 희망한다. 말기가 되면 내보내려는 병원과 나가지 않으려는 환자 간 갈등은 커진다.
이런 갈등 속에서 호스피스는 고통 없이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내도록 돕는 취지와 다르게 점차 대학병원에서 쫓겨나 버려지는 곳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쌓이게 되었다. 집에서 지내기가 점점 힘들어져 호스피스 입원이 시급한데 차라리 요양병원을 가겠다든가 여차하면 그냥 응급실로 오겠다는 환자 가족들이 있다. 나는 이렇게 설득한다. 첫째, 대기가 너무 길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호스피스가 필요할 때 입원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통증 등 여러 증상 조절에 익숙하지 않은 요양병원에 머물면 악화 시 결국 응급실로 보내고 환자가 큰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셋째, 대학병원 응급실은 늘 포화 상태여서 되돌려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고, 병원을 찾지 못해 뺑뺑이를 돌게 된다. 넷째, 운 좋게 응급실로 와 입원하더라도 증상이 안정되면 수술과 항암치료를 위해 대기 중인 다른 환자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고 퇴원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가야 한다.
이렇게 얘길 하면 말기 환자와 가족들은 수긍한다. 대부분 갑자기 열이 나거나 통증이 심해 지역병원 응급실을 찾았을 때 큰 병원 다니는 암 환자라는 말에 다니던 곳으로 가라며 손사래 치는 경험을 해봤기에 때문이다. 솔직히 서울 큰 병원만 찾다가 응급상황에서만 집 근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반가울 리는 없다. 한편 지금은 환자가 안정적인데 미리 호스피스 병원을 준비할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자동차 보험은 언제 가입합니까? 사고가 난 뒤에? 아니면 차를 사자마자? 맞습니다. 후자입니다.” 준비란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해놓는 것이다. 암은 계속 번져 머잖아 힘든 상황이 오는 것은 자명하기에 호스피스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원으로의 입원을 준비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병원의 목적은 마지막까지 환자가 고통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의미한 고통을 주는 중환자실 연명의료는 시행치 않기에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 선행 조건이다. 그다음은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연결하는 소견서이다. 현행법상 말기암 환자만 호스피스 입원 대상이 된다. 말기란 적극적인 암치료가 무의미한 시한부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호스피스 입원을 의뢰하는 소견서에는 ‘항암 및 방사선 치료 계획이 없는 말기 환자’라는 문구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이렇게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원을 설득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후, 호스피스를 의뢰하는 소견서까지 작성하는 게 자문형 호스피스 의사로서의 일차적인 역할이다.
환자와 가족들은 이런 소견서를 들고 호스피스 병원을 찾지만 한달에서 두달이라는 대기 기간을 안내받고 다시금 절망하게 된다. 특히 서울은 쏟아져 나오는 말기암 환자에 비해 호스피스 입원 병상이 턱없이 부족하다. 앞서 말한 대로 말기 환자를 쏟아내는 서울의 수많은 대학병원은 한결같이 입원형 호스피스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서울에는 2026년 6월 기준 약 1만9567곳 병·의원에 8만8905개의 입원 병상이 존재한다. 2000여곳 서울시 병원들 중 입원형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곳은 고작 14개 병원(0.71%) 328병상(0.36%)뿐이다. 단적으로 서울시 인구 928만4263명명 중 단 328명(0.0035%)만 호스피스 입원이 가능하다. 수치만 보면 한달 기다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것도 감지덕지이고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대학병원들의 호스피스 외면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의대생들과 전공의들이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체험하고 수련 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나와 같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의사의 소멸로 이어진다. 올해 4월 한국 호스피스 완화의료학회 학술 대회에서는 더 이상 배출되지 않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의사에 대한 심각성을 논의했다. 학생들과 전공의는 병원에서 말기암 환자에게 완화의료를 시행하는 경험 대신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전원 보내는 것을 매일 보고 배우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말기 환자 돌봄이란 아틀란티스 대륙처럼 지금은 사라진 고대의 의료기술이 되었다. 말기로 진단되면 신속히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하나의 시스템이다. 보내는 곳은 많은데 받을 곳이 없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호스피스가 아닌 요양원, 요양병원, 응급실이며 가리지 않고 말기 환자들이 넘쳐난다.
안타까운 것은 해법을 못 찾고 있는 정부이다. 정부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호스피스 병상 확충보다는 손쉬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접근성을 올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갈 곳 잃은 말기암 환자들이 넘쳐나지만, 이들이 머물 곳을 제공하기보다 어디에 구르든 중환자실만은 못 가도록 막는 각서를 받는 데 치중하는 셈이다. 정부는 2024년 4월 ‘제2차 호스피스 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을 발표하고, 2023년 호스피스 전문기관 188곳을 2028년까지 360곳으로 늘리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은 2024년 101곳에서 2025년 104곳으로 고작 3곳 늘었다가, 2026년엔 되레 1곳 줄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300만명을 돌파했으며, 앞으로는 더 간편하게 온라인 작성할 것이라고 홍보하면서도,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확충은 제자리인 것은 철저히 감추고 있다. 지금도 말기 환자와 가족들이 내 앞에서 울부짖는다. “여명이 3개월이라는데!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여기 대학병원은 입원도 안 받아주고, 호스피스라는 곳은 대기만 두달이랍니다. 편히 죽으려면 어디를 가야 합니까?”
박중철 | 연세암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 없는 삶을 지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자, 인간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다. 주된 관심사는 젊음과 생동력을 추종하며 삶의 완성인 죽음의 가치를 소외시킨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생’(生)의 방향 상실이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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