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마지막을 대우하는 방식이 곧 사회의 품격[기고/김대균]

“생애 말기 돌봄은 단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호스피스 병동과 가정에서 많은 말기 환자들을 돌보며, 의료가 인간의 마지막을 어떻게 대우하느냐가 곧 사회의 품격임을 절실히 느꼈다. 죽음을 다루는 일은 단순히 의료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서로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의 문제다.
한국은 이미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다사사회(多死社會)’에 들어섰다. 2024년 한 해 동안 사망자는 35만여 명, 출생자는 24만여 명에 불과했다. 고령화와 가족구조의 변화로 돌봄의 기반은 급격히 약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은 “가정에서 떠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가정에서 임종하는 비율은 15% 남짓이다. 이는 생명을 연장하는 데는 유능하지만, 삶을 마무리하기에는 불편한 병원 중심의 구조와 재택 돌봄 인프라의 부족이 만든 서글픈 현실이다.
생애 말기 돌봄의 문제는 의료의 미비가 아니라 공공성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병원 과잉, 가정 돌봄 기반의 부족, 비암성 질환의 사각지대, 돌봄 노동의 저평가. 이 네 가지 병목이 돌봄 구조에 깊게 얽혀 있다. 특히 심부전, 만성 폐질환, 신부전, 치매 등 비암성 질환 환자들은 암 환자와 달리 예후가 불확실하고 돌봄 기간이 길다. 이 때문에 제도 설계가 암 중심으로 머물러 있을수록 이들의 고통은 더 길어진다. 이들은 기존 호스피스 제도에서 사실상 배제돼 있다. 병원에 머물 수도, 가정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운 ‘이중의 공백’ 속에 놓여 있다.
결국 거주지, 가족 유무, 소득, 사회적 관계망 등이 죽음의 질을 결정짓는다. 돌봄이 결여된 사회에서 존엄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조건이 된다.
초고령사회로의 전환은 단순히 복지 정책의 대상과 범위를 늘리는 일로 해결되지 않는다. 돌봄의 단위를 다시 짜고, 병원·가정·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통합 돌봄 체계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지자체 중심의 돌봄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돌봄 노동이 ‘헌신’이 아닌 ‘전문성’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지금도 병상 곁에서 “집에 가고 싶다”는 환자들의 말을 매일 듣는다. 그러나 가족의 돌봄 여건이 부족하고, 제도적 지원이 미비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나는 경우가 많다. 돌봄을 가족의 헌신에만 맡겨 둘 수 없는 이유다.
말기 돌봄은 의료·복지·주거가 분리된 현 제도 속에서는 작동하기 어렵다. 지역 단위에서 의료기관, 요양시설, 방문간호, 사회복지 자원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돼야 한다. 일본과 대만은 이미 ‘커뮤니티 케어 시스템’을 통해 가정·의료·복지가 연계된 말기 돌봄을 제도화했다. 우리도 재택의료센터를 지역보건소와 연계하고, 의료 수가를 현실화해 인력이 지속 가능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결국 존엄한 죽음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사람의 마지막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다. 말기 돌봄을 통해 그 사회의 품격이 드러난다. 존엄은 개인이 홀로 지킬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다. 사회가 함께 만들어야 하는 환경이다. 누구도 돌봄의 공백 속에 방치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사회적 존엄의 출발점이다. 지금 우리가 설계해야 할 것은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존엄이 유지되는 사회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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