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죽음 너무 괴로워 조력사 논의까지.. 대리인이 결정할 수 있어야" [유예된 죽음]
<2> 마음이 흩어졌다
[인터뷰]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
연명의료결정법 계기 '김 할머니' 소송
예방의학 전문의이자 변호사로
당시 세브란스 병원 측 소송 대리
편집자주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연명의료결정제가 올해로 시행 7년, 법 제정 기준으로는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300만 돌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사이 이별의 풍경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국 의료 현장에서 확인하고 파악한 실상과 한계, 대안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26일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박형욱 단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가 대리인지정 제도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answer@hankookilbo.com
"단지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을 연장시키는 기술을 거부한다."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제정 취지다. 2016년 만들어져 2018년 시행된 이 법의 뿌리에는 '보라매 병원 사건'과 '김 할머니 사건'이 있다.
1997년 발생한 보라매 병원 사건은 가족의 부당한 퇴원 요구에 응한 의료진이 살인 방조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당연했던 것이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의료계는 그 후 '최대한의 방어 진료'로 의료진과 병원을 지키고자 했다. 환자가 사실상 회복 불가능한 임종 상태, 자연사의 단계에 이르른 환자의 여명을 각종 장치로 연장하는 풍경이 이 기간 반복된 이유다.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 2008년 김옥경(당시 78세) 할머니 가족의 소송이다. 김 할머니 가족은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구했고, 법원은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환자 의사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지 201일 만에 사망했다. 이 사건은 이후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 범위 등을 정한 연명의료결정법이 만들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역사. 그래픽=김대훈 기자
김 할머니 사망 이후 꼭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대한민국 의료 현장이 그가 희망하던 존엄한 이별에 한발 더 다가갔을지 물어봐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본보는 이를 묻기 위해 당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측 소송을 대리했던 변호사이자 예방의학 전문의 박형욱 단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를 서울 서초동에서 최근 만났다. 그는 "대리인 지정이나 우선 친족에 관한 제도가 있어야 현장 부작용이 덜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직된 자기결정권...임종기에만 가능, 대단히 제한적"
2심부터 병원 측을 변호했던 박 교수는 우리나라 연명의료결정법을 "굉장히 독특한 법"이라며 "미리 정해둔 대리인이나 가장 가까운 혈족이 정할 수 있는 미국 등과 달리 우리는 가족 전원이, 그것도 대단히 제한적으로 임종기에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예방의학 전문의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그는 대한의학회 법제이사 등을 지냈다.
박 교수는 무엇보다 '임종기'로 국한한 이행 시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말기와 임종기를 굳이 구분해 협소한 개념의 임종기에만 비로소 가족의 권한을 "대단히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연명의료계획서를 언제 쓸 수 있는지 병원마다 해석이 다르다"며 "이렇게 복잡하면 소규모 병원들은 제도 진입에 엄두를 못 내고 그렇다 보니 환자가 병원을 옮겨 다녀야 하는 등의 여러 문제가 생긴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의 부친 역시 6, 7군데 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가족과 절연된 상태에서 생애 말기를 계속 보내시게 됐다"며 "기도삽관 인공호흡기는 결국 하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박 교수는 또한 "호스피스 대상도 너무 제한해 놓았다"며 "수많은 질환으로 사망하는데 일부 질환만으로 호스피스 대상을 한정하는 건 큰 잘못"이라며 개선을 촉구했다. 이어 법 도입 취지 가운데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내가 미리 지정한 사람이 나 대신 향후 의사결정을 한다'는 선택지가 보장될 경우 "가족 전원 합의보다 환자가 희망하는 의견에 부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교수는 이 경우 변화한 다양한 가족의 형태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사람의 생명을 사람이 결정할 수 없다는 대전제가 있으니까 지금과 같은 법이 나오는 것"이라며 "대리인 지정이나 우선 친족에 관한 제도가 있어야 현장 부작용이 덜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의사 조력사 논의에 대한 견해도 전했다. 박 교수는 "죽음의 과정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강해지면서 현재 고민을 제대로 해결을 못한 채로 갑자기 (논의가) 비약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돼 삶의 끝이 너무 비참한 상황"이라고 했다.
연명의료 중단 관련 주요 용어 설명. 그래픽=김대훈 기자
일문일답으로 더 자세히 묻고 답하다
- 보라매 병원 사건 이후 과잉 의료가 논란됐는데.
"많은 법에서 환자 당사자가 의식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법원은 기본적으로 '거두절미하고 살리는 게 우선'이라는 답을 낸 거다. 하지만 '무조건 살린다는 것'에만 의미를 두면 병원 입장에서는 실제 환자에게 도움이 되든 말든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 시초가 보라매 병원 사건이었다."
- 당시 의협 등의 반발도 컸는데.
"정말 큰일이 난 거였다. 환자가 거의 사망에 이른 상황이면 가족 대표 등과 상의해서 집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이 다 살인죄가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최대한 퇴원을 안 시키는 방향으로 갔다. 안 그래도 의사들은 치료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현장에서는 웬만하면 치료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데 움츠러들기까지 하니까 진짜 끝내 할 수 있는 데까지 했다. 의협에서 뭐 기준이라도 만들자고 했더니 거기에도 비난이 뒤따랐다. '의사들이 사람 살릴 생각은 안 하고 죽이는 기준을 만드냐'는 취지였다. 그러니 현장은 계속 악화돼 갔다."
- 그 과정에서 김 할머니 소송이 제기됐다.
"저는 항소심부터 대리를 했다. 세브란스 병원도 연명의료 중단의 필요성은 알지만, 기독교 병원이기도 하다 보니 가족이 중단을 원한다고 섣불리 응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법원에 올 수는 없으니 법원이 기준을 제시하고 판단을 해달라는 취지로 소송의 방향이 갔다. 그리고 병원 측이 생각하는 기준에 비추면 이 상황은 중단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또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의사였는데, 정말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냐는 여부가 쟁점이 됐다."
- 결국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는데.
"그 판결의 핵심은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럼 그 전에는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다. 그래서 그 뒤 오랜 논의 끝에 연명의료결정법이 만들어졌고, 몇 차례 개정이 됐다. 굉장히 독특한 법이다. 미국 등에서는 환자의 의식이 없다면 가장 가까운 혈족이 정할 수 있는 데 반해 우리는 첫째로 '말기'와 '임종기'를 굳이 구분해서 협소한 개념의 '임종기'에만 비로소 가족의 권한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둘째로는 가족도 가장 가까운 혈족, 법정 대리인(Next of kin)이 아니라 가족 전원이 합의를 해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정리가 됐다."
- 임종기로 국한되면 어떤 점이 어려운가.
"수많은 의사가 매번 언제 연명의료결정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미리 의논을 하려고 하면 임종기도 아닌데 의논하기가 어렵고, 정작 정말 확실한 임종기가 오면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족이 결정해야 하는데, 이게 또 한 명의 보호자나 대리인도 아니고 전원이 합의를 해야 한다. 급박한 임종 상황이 오는데 의사가 환자의 상태뿐 아니라 신경 써야 할 게 그만큼 많아지는 거다."
- '자기결정권' 보장이 핵심인데.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방법은 결국 세 가지다. ①환자가 구두로 직접 진술하는 것 ②환자가 미리 서면으로 작성해 놓는 것 ③나 대신 결정할 사람을 지정해 놓는 것. 우리나라는 세 번째 방법을 채택하지 않고 굉장히 경직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서구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점이다. 오히려 우리보다도 개인 중심인 미국에서조차 '가족이 결정하지 누가 하겠냐'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법은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고 법에 돼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굉장히 협소하게 전원 합의 방식 외에는 인정을 안 한다. 사람의 생명을 사람이 결정할 수 없다는 대전제가 있으니까 이런 법이 나오는 것이다. 대리인 지정이나 우선 친족에 관한 제도가 있어야 현장 부작용이 덜 할 거다."
- 제도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보나.
"의사 조력 자살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지 않나.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될 게 있다는 얘기다. 소위 소극적 안락사라고 할 수 있는 연명의료 중단이 훨씬 덜 위험한 것인데, 현재 이 부분도 제대로 해결을 못 하면서 갑자기 비약을 하는 거다. 죽음의 과정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강한 것이다.
죽으려면 대학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다시 대학병원으로 오가는 과정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아 뭔가 죽음이 이상하고 괴롭구나, 차라리 빨리 내가 결정해서 죽는 것도 좋겠다'까지 생각하게 돼 버리는 것이다. 존엄사라는 표현도 많이 등장하는데 존엄사는 법적으로 불명확한 용어다. 잘못 쓰면 안 된다. 의사가 약물을 주입해 사망케 하는 적극적 안락사, 의사 조력 자살을 쉽게 존엄사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 죽음의 과정이 왜 이렇게 괴로울까.
"현실에서 죽음의 과정이 잘 작동이 되지 않도록 돼 있다.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이 돼 삶의 끝이 너무 비참하다. 연명의료를 계속할 때 보면 보통은 '뭔가 환자가 고통스러운 것 같아서 이상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죽으면 안 되니까 막연히 계속 가는 상황'이 많다. 그래서 상담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 임종기로 국한한 이행 시기도 이슈다.
"말기라고만 해도 이미 대개 치료나 회복은 불가능한 상태인데, 여기서 더 제한해서 임종기에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고 하면 현장에서는 이런 기준을 수용해서 꾸역꾸역 맞출 수 있는 곳이 대형병원만 남는다. 간호사를 비롯한 인력도 있고 제한된 기준에 따른 나름의 노력이 가능하다. 이게 요양병원으로만 가도 어려워진다. 되는 병원 안 되는 병원이 생기면 환자는 옮겨 다녀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생긴다."
- 현장 혼선이 심한가.
"무엇보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언제 쓸 수 있느냐 현장에서 병원마다 해석이 다 다르다. 애매하게 돼 있다. 이렇게 복잡하면 소규모 병원들이 제도 진입에 엄두를 못 낸다. 요양병원 등에 제도가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요양병원에 병실이 비어 있으면 일단 입원을 하고, 위험해진다 싶거나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가족들을 불러서 빨리 큰 병원으로 옮기시라 한다. 큰 병원에 가도 고비를 못 넘길 수도 있고, 약간의 고비만 넘겼다가 계속 옮겨 다니며 편안하게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매번 죽기 위해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야 된다는 게 말이 되나. 대학병원은 그러라고 있는 곳이 아니다."
- 이 병원 저 병원을 오가는 사례가 많나.
"저희 부친도 넘어지며 뇌를 다치셨다. 다행히 의식은 있어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다른 조그만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계속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집에서 치료가 어려우니 병원으로 돌아가게 돼 여러 군데 병원을 옮겨 다니셨다. 어떻게 보면 가족들과 절연된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생애 말기를 계속 보내게 되신 거다. 악화되면 큰 병원에 갔다가, 나아지면 작은 병원으로 왔다, 그렇게 6, 7번을 병원에서 병원을 오가신 것 같다."
- 연명의료는 중단하셨나.
“인공호흡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도, 이 문제를 강의도 하는 입장인데도 막상 아버지 일이 되니까 결정하기가 쉽지 않더라. 나중에는 손발에 강직이 왔다. 저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마지막에 기도삽관은 안 했다."
- 또 다른 개선 여지는.
"연명의료결정법과 호스피스법이 각자 논의하다 하나로 합쳐진 점도 특이한데, 호스피스 대상도 너무 제한해 놓았다. 지원을 해주겠다면서도 감당이 다 안되니까 제한해버렸는데 수많은 질환으로 사망하는데 딱 몇 개 질환으로 한정하는 건 큰 잘못이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연명의료결정 절차. 그래픽=이지원 기자
■ '유예된 죽음' 특별취재팀
팀장= 김혜영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손영하 · 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백혜진 · 정혜원 인턴기자
사진= 정다빈 · 강예진 기자
영상= 박고은 · 이수연 · 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전세희 모션그래퍼, 김서정 인턴PD
인터랙티브= 박인혜 기획자, 남유진 개발자, 이정화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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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피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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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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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에서 헤맸다
-
자책에 빠졌다
-
존엄한 작별이란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기사 원문보러가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22180002265?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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