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끝난 장례식 이후에는 화장장이 문제였다. 대도시에 사는 A씨는 마땅한 화장장이 없어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화장장을 가야만 했다. 가서도 하염없이 차례를 기다렸다. A씨를 포함해 지친 유족들은 좁은 방안에서 계속 대기했다. 다행히 봉안 장소는 미리 구한 덕에 ‘대란’을 피했다.
“아버지가 미리 봉안 장소를 구한 덕에 마지막엔 고생을 덜했다. 봉안 장소도 정해지지 않았다면 장례식 내내 시달렸을 것이다. 돈과 절차만 신경 쓰다 보니 정작 아버지와의 추억은 제대로 곱씹지도 못했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1950~1960년대 출생자)가 ‘고령층’에 접어들었다. 압도적인 인구수를 자랑하는 세대가 질병과 죽음에 노출되는 ‘다병(多病)사회’ ‘다사(多死)사회’가 된 것이다.
다사사회 초입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와 공장식 장례로 점철된 한국의 ‘죽음 문화’는 변하고 있다. 고귀하고 편안히 기억될 권리, 이른바 ‘웰엔딩(well-ending)’을 추구하는 움직임이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웰엔딩은 아직 출발선에 가깝다. 당장 제도적으로 허용된 첫걸음은 연명의료 중단이다. 이 단계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이후 논의 방향을 좌우한다. 현재까지는 절반의 성공이다. 2018년 시행 이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만 300만명을 넘어설 만큼 제도 홍보가 이뤄졌지만, 실제 중단 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지점이 여럿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사전 논의 단계부터 중단 이후 돌봄 단계까지 모든 부분에서 문제가 산적했다”고 지적한다.
삶을 마무리한 뒤 이어지는 장례식도 변하고 있다. 그간 장례문화는 종교를 막론하고 형태가 비슷했다. 비싼 장례식장에서 3일장을 진행하고 형식적인 화장을 거쳐 매장하거나 납골당에 봉안했다. 죽은 이를 고귀하게 모시자는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돈과 행정절차만 따지는 ‘효율성’만 남았다. 물건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처럼 사자(死者)를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방식 때문에 ‘공장식 장례’란 오명이 붙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장례식 대신 생전에 추억을 나누는 ‘생전식’을 하려는 이가 증가하는 추세다. 화장 대신 수목장 등 자연과 하나가 되는 자연장이 장례 선호도 1위에 올라섰다. 디지털 서버에 본인의 생전 추억을 옮겨놓는 ‘디지털 장’ 등 AI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노인 84.1% 연명의료 거부
기대수명 못 따라가는 건강수명
웰 엔딩 논의는 한국 상황과 맞물렸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는 나라다. 동시에 초고령사회다.
초고령사회는 기대수명이 늘어난 결과다. 문제는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건강수명(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은 못 따라간다는 점이다.
국가데이터처 ‘2024년 생명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자의 기대수명은 83.7세다. 역대 최고치다. 반면 건강수명은 남자 64.6세, 여자 66.4세에 그쳤다. 각각 전년 대비 0.5년, 0.2년 줄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은 늦춰졌지만, 고통의 시간도 함께 길어진 꼴이다. ‘유병장수’란 말이 생겨난 배경이다. 대형병원 관계자는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최소 18년 이상 질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현실은 ‘연장된 삶’이 반드시 축복이 아니란 점을 깨우치게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고령층은 치료의 끝에서 다른 선택을 고민한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이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힌 65세 이상 고령층은 84.1%에 달했다.
현실로 반영 안 된 환자 의지
단계별 구조적 문제 산적해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 ~2023년)간 65세 이상 고령 사망자(259만명) 중 연명 의료를 아예 받지 않거나 중도에 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쳤다. 고령 환자의 84.1%가 생전에 연명 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2023년 노인실태조사)을 보인 것과 큰 차이가 난다.
한은 보고서는 “상당수 고령 환자들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임종 직전까지 연명 시술을 경험하고 있으며, 연명 의료를 경험한 환자와 중단한 환자가 함께 증가한 점을 보면 연명의료를 여러 차례 받은 뒤에야 중단하는 사례가 상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① 사전 논의 → ② 의료기관 선택 → ③ 임종기 판정 → ④ 중단 이후 돌봄 등 연명의료 결정 전 과정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제도적·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셈이다.
한국 사회는 죽음 관련 논의를 기피하는 문화가 뿌리 깊다. 환자의 평소 의사가 가족과 의료진에게 충분히 전달되기 어려운 구조다. 이에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 내려야 하는 시점이 임박해서야 의제가 떠오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시점엔 환자 개별 의사보다는 가족 구성원 의견이 중심이 된다. 2018년 도입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19세 이상의 성인이 본인이 향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됐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 의향을 작성할 수 있는 문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종합병원,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등)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작성하는 형태다. 한국은행이 고령암 환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미작성 사유를 보면 ‘제도를 잘 알지 못해서’란 답변이 32.6%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저변 다변화를 강조한다. 종합병원과 보건소 등에 한정된 등록기관을 1차 의료기관까지 확대하고 온라인 등록과 AI 기반 간편 상담이 가능한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의료기관 선택 단계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연명의료 중단 절차를 개시하려면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설치된 의료기관은 많지 않다.
공공데이터포털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상급종합병원엔 100% 설치돼 있으나 종합병원(65%), 요양병원(11%), 병원(3%)으로 갈수록 그 비율이 낮다. 환자 입장에선 소위 ‘서울 큰 병원’으로 가야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한 꼴이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의료기관 사이 정보 공유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료윤리학회에 게재된 ‘생애 말기 의학적 돌봄 향상을 위한 연명의료결정법의 개정방안’에 따르면, 의료기관 사이 연명치료 관련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건 연명의료정보처리시스템이다. 그런데 해당 시스템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를 설치한 기관에 한해 접근 가능하다. 대부분의 요양병원이 윤리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명의료 관련 정보를 아는 것조차 어렵다.
대안으로 탄생한 공용윤리위원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공용윤리위원회는 직접 윤리위원회를 구성하기 힘든 중소형 의료기관을 고려해 만들어진 기구다. 여러 의료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거나 위탁해 사용하는 윤리위원회다.
하지만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의료 업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3개 정도다.

주관의 영역 임종기 판단
의료진 보수적 판단 허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있는 병원에 입원했더라도, 연명의료가 즉시 중단되는 건 아니다. 현행법(연명의료결정법)이 ‘회생이 불가능하고 임종이 임박한 상태’로 정의되는 임종기에만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해서다.
문제는 임종기 판단은 ‘주관의 영역’에 가깝다는 점이다. 대부분 질환에서 임종 시점을 의학적으로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임종기 여부에 대한 판단을 상당 부분 의료인의 개인적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의료진 2인 이상이 임종기를 선언해야 하는데, 사후 법적 책임 우려가 크다 보니, 의료진은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게 의료 업계 종사자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임종기 판단은 늦어지고 연명의료는 관성처럼 이어진다.
최근 어머니를 떠나보낸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70대 환자였던 B씨의 어머니는 20년 전 결핵으로 기관지확장증과 폐심장증을 진단받았다. 반복되는 객혈과 폐렴으로 일년에 두세 차례씩 입원 치료를 받았다. 치료 때마다 매번 위기가 찾아왔다. 마지막 치료도 마찬가지였다. 치료 중 고이산화탄소혈증이 악화돼 인공호흡기를 착용했고, 회복된 듯했지만 다음 날 저혈압과 의식저하가 나타났다. 의료진은 ‘중환자실 치료’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가족은 거부하며 의료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임종기를 선언하지 않았다. 환자의 가족들에게 중환자실 입실 후 적극적 치료만 강조할 뿐이었다. 설득된 가족은 치료를 이어갔으나, 얼마 안 가 환자는 가족 곁을 떠났다.
끝으로 중단 이후 돌봄 단계에선 호스피스·완화의료(이하 호스피스) 등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문제다. 호스피스는 삶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통증을 없애 신체적 고통을 덜어주는 한편,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 고통까지 돌보는 의료 방식이다. 호스피스는 병동에 입원해 서비스받는 입원형 호스피스가 대부분이다. 존엄사가 불가능한 한국 사회에서 유일한 웰 엔딩 수단이다.
하지만 호스피스 이용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중앙호스피스센터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전국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103개소에 불과하다.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 수도 1798개에 그친다. 유럽완화의료협회(EAPC) 등은 인구 100만명당 병상 수가 50개는 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은 100만명당 35개 수준(인구 5170만명, 병상 수 1798개)이다. 더군다나 호스피스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돼 거주지에 따라 접근 가능성이 떨어진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2028년까지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360곳으로 확충해 이용률도 2023년 말 기준 33%에서 50%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고통의 연명치료 끝에
‘공장식 장례’로 한 번 더 고통
망자와 가족의 고통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서 끝나지 않는다. 죽음 뒤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온다. 바로 죽음 이후의 장례다.
한국 사회는 종교나 직급, 사회적 위치와 관계없이 장례 절차가 거의 똑같다. 대학병원 또는 대형 장례식장에 시신을 안치하고 3~4일 문상객을 맞는다. 이후 화장 절차를 거쳐 납골당에 봉안한다. 상주와 남겨진 이를 위로하는 문화라기보단, 망자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행정 절차’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장례를 처리하는 행태 때문에 ‘공장식 장례’라고도 불린다.
공장식 장례 절차 속, 피해는 고스란히 남은 가족 몫이다. 쫓기듯이 장례식장에 거금을 지불하고, 화장장에서는 화장 순서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망인을 모실 납골당 구하기도 전쟁이다. 장례 기간 내내 남은 유가족은 돈과 시간에 쫓겨 제대로 된 위로조차 못 받는 형국이다.
장례식장부터 유가족은 ‘갑질’에 시달린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5년 3월까지 5년 3개월간 정부 각 기관에 접수된 장례 관련 민원은 551건에 달한다. 장례 과정에서 불합리한 요구를 받았다는 민원이 가장 많았고, 음식물을 재사용하는 등 위생상 문제가 있다는 불만과 꽃이 재사용되고 있다는 민원도 상당수였다. 불효자는 피하고 싶은 경황 없는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이쑤시개 하나도 돈으로 계산된’ 장례 청구서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3일장을 끝내면 화장터 구하기 전쟁이 유족을 기다린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사회는 매장이 주류였다. 그러나 20년간 장례 문화가 급격히 바뀌면서, 화장이 대세가 됐다. 한국 화장률은 2001년 38.5%에서 2025년 94%까지 올라왔다.
화장률은 높아지고 있는데, 시도별 화장로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장사 통계에 따르면, 인구가 가장 많은 경기도의 경우 화장로 수가 24.7%나 부족하다. 서울(15.8%), 부산(10.6%), 대구(4.9%) 순서로 화장로가 부족하다. 전국 평균으로 보더라도, 당해 연도 전체 사망자 수가 연간 화장 가능 구수를 넘어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족이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화장로를 이용하려면 일정을 예측하지 못한 채 순서를 마냥 기다려야 하거나, 멀리 떨어진 지역의 화장시설까지 이동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화장을 끝내고 나면 모실 곳을 두고 다른 유족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현재 전국 봉안시설의 봉안 가능 구수는 전국 기준으로 약 456만구 수준이다. 연간 사망자 수를 고려하면 10년 이상 여유가 있다.
그러나 지역별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이미 포화상태다. 서울은 향후 봉안 가능 구수가 2022년도 사망자 수보다도 적은 상황이고, 부산·대구·광주·울산 등 대도시도 여력이 거의 없다. 또 설치된 지 오래된 노후 봉안시설은 폭우와 산사태 등 천재지변에 취약하다. 40년 단위로 재건축이 이뤄지는 아파트와 달리 봉안시설은 재개발·재건축 사례가 드물다. 언제까지나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진정한 웰 엔딩 추구하자
디지털에 ‘추억’ 남기기도
# 경기도 양평, 청란교회 앞 마련된 잔디밭에 50여명의 사람이 모여 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파티가 한창이다. 풍경은 다소 독특하다. 웃음을 짓고 활발히 이야기를 나누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파티장 한쪽에는 흑백 사진부터 선명한 컬러 사진까지 한 인물의 연대기가 쭉 펼쳐져 있다. 일반적인 파티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 모임은 ‘생전식’이라 불리는 ‘엔딩 파티’다. 죽어서 진행하는 장례식이 아닌, 삶을 마무리하기 전 지인과 가족들을 모아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행사다. 행사의 주인공은 동요 ‘시소’의 작곡자 신영교 씨. 살아생전 가족들과 그간의 삶을 돌아보자는 취지서 행사를 기획했다. 그는 이날 생전 모습과 추억 그리고 순간을 기록한 영상을 보며 지인들과 삶을 반추했다.
최근 들어서는 무분별한 ‘공장식 장례’를 넘어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려는 바람이 분다. 장례식 문화부터 봉안까지 기존의 일방적인 방식을 탈피하려는 것이다.
장례식은 생전에 미리 손님을 맞이하는 이른바 생전식(生前式)에 나서는 이가 늘고 있다. 한국 사회 속설로 ‘결혼식은 부모 손님, 장례식은 자식 손님’이란 말이 있다. 결혼에는 부모의 지인들이 자리를 채우고, 장례식은 자식과 친분이 있는 이들이 조문을 온다는 표현이다. 그나마 본인 지인도 상당수가 방문하는 결혼식과 달리, 장례식은 특성상 본인 지인이 많이 오지 않는다. 본인과 인연이 있는 사람과 제대로 안녕을 고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생전식은 이런 폐해를 막자는 취지에서 생겨난 문화다. ‘엔딩 파티(Ending party)’라 부르기도 하고, 사후에도 추억은 계속된다는 의미에서 ‘앤딩 파티(Anding party)’라고도 한다. 살아생전 본인과 인연을 쌓았던 사람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식으로 진행한다. 장례 문화 개선에 앞장서온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는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니, 본인과 본인 가족을 위해 스스로 생을 매듭짓는 행사 차원에서 ‘엔딩 파티’를 진행하는 이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일괄적인 ‘화장 후 봉안’도 거부하는 분위기다. 자연에 묻히는 수목장(자연장)을 비롯, 산·바다 등 자연에 유골을 뿌리는 산분장을 선호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장례문화 대국민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가 가장 희망하는 장사 방법으로 자연장(37.6%)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봉안(35.3%), 산분장(22.6%) 등이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장사 방법인 매장은 4.5%로 선호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친환경적이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 등의 이유로 산분장 정책에 찬성하는 비율도 응답자 전체의 74.8%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은 이미 자연장과 산분장 등 새로운 방법을 원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연장지 시설 부족으로 인해 90%가 넘는 시신이 화장으로 처리된다. 산분장 역시 규제가 엄격해 절차가 까다롭다. 원시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기존에 장사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는 다양한 유형의 자연장지 설치가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자연장지 설치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연장과 산분장을 원하는 이가 늘면서 자연스레 추모 방법도 변하는 모습이다. 묘지나 봉안시설의 경우 직접 대면으로 찾아가 조문이 가능하지만, 자연장과 산분장은 특성상 묘소를 특정해 추모하기 힘들다. 자연·산분장을 택한 이들이 대안으로 택한 것이 바로 ‘디지털 장례’다. 기존의 물리적 추모 공간을 사이버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원시연 조사관은 “망자의 목소리와 모습 등을 구현해 내는 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추모 아카이브 등 새로운 추모의 방식과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 중이다. 대표적인 곳이 ‘얼라이브’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웬이다. 얼라이브는 기존 유골 봉안에 비해 가격을 크게 낮추고 접근성을 강화한 혈액 봉안 서비스다. 핵심은 혈액과 디지털 콘텐츠가 함께 담긴 스마트 추모 오브제 ‘마이블록’이다. 혈액을 넣는 보관소와 NFC 칩, QR코드로 구성됐다. 칩에 스마트폰을 대거나 QR코드를 인식하면 고인의 디지털 페이지로 연결된다. 해당 페이지엔 본인이 직접 기록한 인생 이야기, 사진, 동영상, 음성 메시지 등이 영구 보존된다. 이렇게 제작된 마이블록은 전국 각지 교회 내 추모 공간, 지역 커뮤니티 센터 등에 봉안이 가능하다.
현재 양평 하이패밀리 갤러리에 봉안 공간 ‘기억의 벽’을 마련했다. 초기 조성 규모는 156칸이다. 선착순 분양 중인데 현재 50명 정도가 참여했다. 전범주 스웬 대표는 “새로운 장례 방식에 대한 니즈가 다양한 만큼 공동체 추모를 위한 공용 공간도 전국적으로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처럼 진행하는 한국식 장례 이젠 바뀌어야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는 목회자로서 장례와 추모 문화 개선에 앞장서온 운동가다. 의미 있는 임종을 돕는 ‘엔딩 플래너’로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현재 양평 청란 교회 담임목사인 그는 스웬이 만든 추모 서비스 ‘얼라이브’를 가장 먼저 도입하기도 했다. 그가 바라본 한국식 장례의 문제는 무엇일까.

Q. 한국 장례 문화 중 가장 큰 문제는.
A. 비대면 장례가 가장 큰 비극이다. 장례식장에서는 망인과 아무 관계없는 의미 없는 행동들이 너무 많다. 사자에 대한 인권이나 존엄함이 사라진 채 시신을 분리수거하듯 다루고 있다. 추모 문화는 사라지고 겉치레만 지나치게 강조한다. 고인에 대한 추모도 실종됐다. 식장이나 봉안시설을 돌아만 보고 가는 식이다.
Q.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A. 기존 세대보다 인구가 많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고령층이 됐다. 이제 곧 많은 사람이 죽는 다사사회가 온다. 이에 대비해야 한다. 규모는 스몰 웨딩처럼 소박하고 간편해져야 한다. 필요한 사람들만 초대하는 형태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허례허식보단 망인의 생전 추억과 삶의 모습을 주제로 얘기를 나누는 행사가 돼야 한다. 조화가 몇 개 왔는지 줄 세워서, 많이 오면 ‘호상이다’라고 평가하는 시대는 끝났다. 기술도 발전하지 않나.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고인의 얘기가 살아 있는 디지털 추모 등도 고려해볼 만하다.
Q. 양평에 ‘얼라이브 서비스’ 공간을 처음 마련했다.
A. 우리 장례 문화가 바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억 공간에 ‘생명장’이란 이름도 붙였다. 기술을 활용해 고인의 생전 얘기, 추억 등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하이패밀리 갤러리는 기존에 다양한 장례 방식을 도입하고 고민해온 장소다. 곧 바뀔 한국 장례 문화를 먼저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Q. 추후 앞으로의 목표는.
A. 장례 방식 변화에 대비하려 한다. 찍어내기식 장례문화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야기와 울림이 있는 추모 문화 도입을 위해 스웬 등 기업과 협업할 예정이다. ‘인문학의 서사’를 갖춘 장례 공간 형성 등에도 힘쓸 계획이다.
미국, 영국, 대만 ‘사전돌봄’ 제대로 안착
해외 주요국에서 연명의료결정은 더 이상 임종 직전 내리는 선택이 아니다. 일부 국가는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사전돌봄계획(ACP·Advance Care Planning) 일부로 제도화했다. 사전돌봄계획은 임종 직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 상황을 대비해 본인이 희망하는 의료 행위를 미리 선택하는 제도다.
미국은 1991년 세계 최초로 사전의료지시(AD·Advance Directive)를 제도화했다. 모든 성인은 의사 상담 없이도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할 수 있다. 통상 대리인 지정이나 가치관·종교 신념, 치료 선호 등을 기록한다.
이후 심각한 건강 상태에 이르면 연명의료지시서를 통해 세부 처치 항목을 다시 선택한다. 연명의료지시서는 임상 현장에서 바로 적용될 수 있도록 처치 단위로 작성된다.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 시행하지 않을 치료를 명확히 기재한다. 연명의료 중단 판단 시점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상태’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와 의료진 간 이견이 발생하면 의료기관 내 윤리위원회가 최종 판단에 개입하도록 설계됐다.
대만은 연명의료결정 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확장한 국가다. 2015년 ‘환자자주권리법’ 제정을 통해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할 수 있는 대상을 넓혔다. 이전까지는 연명의료결정이 임종 직전에만 허용됐다. 법 제정 이후 회복 불가한 혼수상태, 지속적 식물상태, 중증 치매 환자, 고통이 극심하고 회복 가능성이 없는 질병 상태 등도 포함했다.
또한 환자자주권리법은 모든 성인이 의료기관에서 사전돌봄계획 상담을 거쳐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심폐소생술·연명의료 등 원치 않는 처치를 선택할 수 있다. 사전의료지시서 효력 요건은 엄격히 규정됐다. 공증인의 공증을 받거나 증인 2명이 입회한 상태에서 작성한 뒤 의료기관이 날인해야 효력이 인정된다. 작성된 사전의료지시서는 건강보험카드 시스템에 등록된다.
의료위임대리인을 지정해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했을 때를 대비하는 구조도 제도에 포함됐다. 대리인은 환자가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했을 때 환자 의사를 반영한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건강할 때부터 의료진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선택을 남기고, 환자 의사가 의료 시스템에서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든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영국은 연명의료결정을 통일된 서식보다 판단 원칙에 무게를 두고 설계했다. 2005년 제정된 ‘의사결정능력법’을 통해 연명의료결정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영국은 특정한 통일 서식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고, 사전의료지시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핵심 요소를 규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국의 사전의료지시는 사전결정, 사전진술, 사전돌봄계획으로 구분된다. 이 중 사전결정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문서다. 환자는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항생제 등 특정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사전에 명시할 수 있다. 지정 대리인이 없더라도 환자 의사가 존중받도록 보완 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영국은 ‘의사능력대변인제도’를 운영해 가족·지인이 없는 의사 무능력 환자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최창원·반진욱 기자, 박환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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