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한은 총재의 눈물과 ‘좋은 죽음’을 위한 소통 [아침햇발]
황보연기자
지난 11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울먹임이 화제가 됐다. 한은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공동으로 생애말기 연명의료에 관한 심포지엄을 연 자리였다. 연단에서 행사 취지를 소개하던 이 총재가 돌연 개인사를 꺼내며 울먹였다. 사전 배포된 원고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그는 “올해 8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어머니께서는 영양제는 더 넣지 말고 통증만 조치를 취해달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지나고 보니까 어머니한테도 좋은 선택이었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총재의 발언만으로 보면, 모친은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눈물을 삼킨 것은 그 과정에서 겪었던 고심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유교적 전통에 기반한 ‘효’와 ‘장수’가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회에서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결정은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치료를 해도 회복되지 않는 임종기 환자에게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다.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과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에크모 이용),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을 말한다. 영양분과 물은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끊어선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 안락사로 오해되거나 확대되어선 안 된다는 입법 의도가 담겨 있다. 통증을 줄이는 의료행위는 당연히 지속된다.
적절한 시기에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환자는 고강도 치료가 집중되는 데 따른 신체적 고통을 덜고 가족은 경제적 부담을 던다. 사회 전체로도 의료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이 총재가 ‘어머니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좋다’고 한 이유이자, 거시경제를 다루는 한은이 이례적으로 연명의료 연구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연명의료를 받는 환자 수는 지난 10년간(2013~2023년) 연평균 6.4%씩 더 늘었다고 한다. 미리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혀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가 316만여명에 달하고 각종 조사에서도 연명의료 ‘거부 의사’가 높게 나타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 배경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연구진이 ‘죽음에 대한 대화 부재’를 우선적으로 거론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가족끼리도 죽음에 대해 대화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선 수개월 이내 임종이 예상되는 말기 환자에게도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내 가족인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다. 혹여라도 환자의 생존 의지를 꺾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 의사소통은 경직된다. 그러는 사이, 생애말기를 환자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치료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싶은지는 묻지도 못한다. 대개의 경우, 의료진과 가족이 임종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야 연명의료에 관해 상의하게 된다.
가족의 의사에 맡겨지는 현실은 제도에도 반영돼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통계를 보면, 그간 연명의료 중단이 이행된 47만여명(올해 11월 누적 기준) 가운데 가족 결정에 의한 비중이 약 57%에 달한다. 환자 스스로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단계에서, 평소 환자 의사를 가족 두명 이상이 진술하거나 가족 전원 합의로 결정된 경우다. 나머지 32%는 의료진이 환자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고 11%만이 사전에 본인이 직접 의향서를 쓴 이들이다.
가족 간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연구진이 고령 암 사망자 가족 1천명 중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28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약 20%가 가족 간 갈등을 경험했다. 1991년 미국 의료계에 등장한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이런 갈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장기간 연락이 없던 자녀가 환자의 임종기에 나타나 그간 왕래가 없었던 데 대한 미안함으로 연명의료 중단에 반대하고, 그에 따라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다만 ‘좋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소통만으로 되진 않는다. 가족의 망설임 뒤에 숨은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연명의료 중단 이후 돌봄에 대한 막막함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턱없이 부족하고 재택의료는 물론이고 임종돌봄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한 실정에서 연명의료 중단의 이점만 부각시켜선 안 된다. 우리나라가 유독 병원 임종 비중이 높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은 연구보고서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높이기 위한 일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데 비해,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해 한발짝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각별히 아쉬운 대목이다. 생애말기 돌봄 인프라를 어떻게 확충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물꼬를 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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