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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선데이] '임종기' 기준 탓 연명의료 중단 쉽지 않다
    2026-02-26 11:51:53
    관리자
    조회수   10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박수영(64)씨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실 앞을 한참이나 서성이고 있었다. 박씨는 “2년 전 아버지가 연명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미리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검진차 병원에 들른 김에 이런 나의 뜻을 서류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총 322만8152명으로 집계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이 향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됐을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으로, 2018년 제도 시행 첫해 8만6691명에서 8년 만에 30배 이상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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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현민 기자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1090만 명 중 22%에 해당하는 237만3565명이 의향서에 서명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여성이 213만 명으로 남성보다 2배가량 많았다. 이 중 실제로 사전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가족 전원 합의 등을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 사례도 48만5932건에 달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등록 기관을 800곳까지 늘리며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며 “존엄한 마무리 문화가 성숙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갈수록 확산되는 가운데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높은 등록률에 비해 실제 이행률은 여전히 낮은 실정이다. 2024년 기준 연명의료 중단 이행률은 전체 사망자의 19.5%에 불과했다. 이처럼 이행률이 낮은 것은 무엇보다 현행법상 연명의료 중단 가능 시점을 사망이 임박한 ‘임종기’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말기’ 환자라도 생체 징후가 급격히 무너지지 않으면 법적 임종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현상(48)씨는 2주째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마음이 타들어 간다. 3년 넘게 폐암 투병 중인 이씨의 부친은 일찍이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의료진은 인공호흡기 중단을 거부하고 있다. 아직 ‘임종 과정(사망 임박)’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본인이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남겼음에도 실제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며 “더 이상의 연명의료는 무의미할 것 같아 이번 고비를 넘기면 퇴원해 재택치료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복지부가 지난해 실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의학 전문가의 82%가 연명의료 중단 시점을 임종기에서 말기로 앞당겨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되면 의료 현장에서도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 말기와 임종기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미 미국과 일본·영국 등은 말기부터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하고 있는 중이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현행 법률에선 임종 과정과 말기 구분 등이 굉장히 엄격한데 실제로는 임상적으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중단 시점을 말기로 확대하면 현장의 혼란을 줄이고 환자의 자기결정권도 보다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명의료 중단 이행률이 낮은 데는 가족들 간의 대화가 부족한 현실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강보험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요양시설 보호자의 88.3%가 연명치료 중단에 동의하면서도 실제 연명의료 중단 의향이나 임종 장소 등을 놓고 당사자와 직접 대화를 나눈 경우는 24.2%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 시기를 놓친 주된 이유로는 ‘대화 불가능 상태(58.8%)’와 ‘방법을 몰라서(38.4%)’가 꼽혔다. 의료계에선 대형병원이나 보건소 외에 말기 환자가 많은 사설 요양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느냐가 연명의료 중단 확대에 관건이 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본격 나서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본인과 가족에게 고통이며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이라며 제도 개선과 함께 인센티브 검토를 지시하면서 건강보험료 감면 등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종교계와 일부 시민단체는 “연명의료 중단에 건보료 감면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것은 자칫 ‘죽음을 장려한다’는 윤리적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유인책에 앞서 제도의 질적 내실화가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이 통증 조절이나 기본 치료 자체를 포기하는 것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명확한 설명 체계가 필요하다”며 “법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정교한 가이드라인도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특히 암 이외의 질환은 임종기 구분이 더욱 어렵다는 점에서 보다 세밀한 시행 매뉴얼이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형숙 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는 “서류 작성에 그치지 않고, 사후에도 가족들이 당사자 뜻을 알고 결정할 수 있도록 생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며 “재택 임종 돌봄도 단순히 수가를 올리는 데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 의료진이 환자의 임종 단계까지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는 법적 보호 장치 마련이 병행돼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허정연 기자

     

    원문기사보러가기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6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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