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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죽음 불안’이 삶에 길이 되려면
    2025-11-24 22:20:11
    관리자
    조회수   7

    ‘죽음 불안’이 삶에 길이 되려면

    [박중철 당신의 마침표] 05_특별한 삶

     

    영화 ‘안녕, 헤이즐’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화 ‘안녕, 헤이즐’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2014년 국내 개봉한 영화 ‘안녕, 헤이즐’은 죽음을 주제로 다룬 영화다. 말기 림프암 환자인 10대 여주인공 헤이즐은 자신이 태어난 것 자체가 실수라고 생각한다. 유년기부터 암 투병을 하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태어나 병치레만 하다 죽는 삶이 무슨 의미인지 혼란스럽다. 무엇보다 자신이 죽고 나면 슬픔으로 부모의 인생 역시 망가질까 걱정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결국 비극을 불러오는 폭탄이라고 말한다. 헤이즐은 10대 암 환자 모임에서 육종암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도 유쾌한 남자 거스를 만난다. 헤이즐과 거스 둘 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살지만 이 두 남녀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삶을 비관하며 경계하는 헤이즐과 달리 거스는 자신은 위대한 영웅이 될 거라며 자신감이 넘친다. 영웅 서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는 시련이다. 죽음을 극복하는 것은 영웅의 필수 자격이고 그 이야기는 후대에 길이 남는 신화가 된다. 거스는 영웅에 대한 꿈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비극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특별한 인생을 꿈꾼다. 우리 모두의 어릴 적 꿈은 영웅이다. 경찰, 축구선수, 요리사, 의사 등등 꿈은 달라도 결코 평범한 삶을 추구하진 않는다. 비열한 조직폭력배들을 일망타진하는 경찰, 월드컵 우승을 이끄는 축구선수, 평범한 식재료로도 모두를 감동시키는 요리사, 절체절명의 순간에 귀신 같은 수술로 환자를 살려내는 의사처럼 모두 다 영웅 서사를 꿈꾼다. 우리는 무의식 중 인생은 한번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한번의 삶이 특별하기를 바란다. 오스트리아 출신 심리학자 오토 랑크(1884~1939)는 이렇게 영웅성을 추앙하는 인간의 본성을 파헤쳤다. 그는 모세, 길가메시, 헤라클레스, 로물루스, 예수 등 유명한 서구 신화와 전설 속 인물들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모두 유년 혹은 청년 시절 죽음의 문턱을 넘어 영웅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영웅 추앙의 이면에는 삶의 유한함 즉,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피조물의 원초적 열등감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두려움과 열등감은 우월해지려는 욕망을 끝없이 추동한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어니스트 베커(1924~1974)는 오토 랑크의 바통을 이어받아 영웅을 욕망하는 심리를 한층 더 파고든다. 자신의 유한함을 자각한 인간은 그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 우월 또는 불멸의 존재를 꿈꾼다. 권력을 얻어 자신을 우상화하고, 이를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동상, 기념비, 무덤, 궁전 등을 건축하는 것은 영웅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자기 우상화는 타인과 다른 집단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폭력으로 변질하곤 했다. 인종, 종교, 문화, 국가 간 반복되는 분쟁의 바탕에는 신과 견줄 만한 우월성으로 죽음을 부정하려는 욕망이 작동하고 있음을 베커는 지적한다. 원리주의 종교와 극우화된 이념 뒤에 늘 따라다니는 전쟁과 인종 학살은 어긋난 죽음 부정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극단적인 사상에 군중이 휩쓸리는 이유는 우월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통해 초라한 자기 존재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심리를 파고들어 한국의 병원과 백화점, 교회들은 경쟁하듯 대형화하고 그럴수록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곳의 일원이 되면 특별한 삶을 사는 듯 착각하게 된다. 반면 죽음 불안의 에너지를 우월함의 과시가 아닌 타인의 행복과 인류 문명 발전의 소재로 승화하는 이도 있다. 베커는 전자를 위험한 사기꾼, 후자를 성숙한 영웅이라고 말한다.

    죽음 부정와 영웅주의의 상관성은 21세기 사회심리학자들을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톰 피슈친스키와 동료들은 다양한 조건 아래서 죽음 불안이 주입된 개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였다. 예를 들면 운전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죽음 불안이 커진 이후 더 빠르게 차를 몰았고, 힘이 센 사람은 더 세게 악수를 했으며, 운동 마니아는 더 격렬히 운동에 몰입했고, 외모가 빼어난 사람은 한층 화려하게 외모를 꾸몄다. 사람마다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자존감의 근거가 있는데, 죽음 불안이 자극되자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보상 행동을 했다.

    연구진은 모든 인간의 무의식에는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공포, 즉 존재론적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으며, 더 높은 자존감을 추구해 이를 극복하게 된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에서 말기 암 환자인 26살 청년 윤혁은 암이 진행될수록 선명하게 삶의 끝을 보게 된다. 헬스 트레이너이자 체육 교사가 꿈이었던 그는 병원 천장을 보며 이렇게 무력하게 죽을 수 없다고 결심하고 팀을 꾸려 철인들만 참가하는 ‘뚜르 드 프랑스’라는 3500㎞ 자전거 경주에 나선다. 그는 완주를 통해 남들이 해내지 못한 것을 이뤄낸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제공

     

    하지만 자존감을 채우는 과정에서 타인을 혐오하거나 파괴하는 폭력도 공공연하게 발생한다. 여기서 비슷한 듯 다른 자존감과 자존심이 구분된다. 인간의 마음은 넓고 좁음 없이 모두가 같은 크기를 갖는다. 플라스틱 생수병을 생각해보자. 물이 많이 차 있을수록 외부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물을 비워낼수록 공기만 남은 플라스틱병은 바람에 넘어지기 쉽다. 우리 마음도 이와 같다. 무게를 지닌 자존감이 빠져나간 마음 공간은 공기처럼 가벼운 자존심만 남는다. 우리말은 자존감은 채우고, 자존심은 세운다고 하는데 그 표현이 참으로 절묘하다. 자존감을 채우지 못하면 빈곤한 내면이 드러날까 경계하며 자존심만 높이 세우게 된다. 작은 무시에도 흔들리는 자존심은 한순간 폭발해 폭력이 된다. 반면 성실하게 노력해서 얻는 성취감과 인정은 자존감의 원천이다. 그래서 인정받지 못하면 자존심이 과해지고, 과시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강요하게 된다. 그 대상은 주로 자신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과시를 위해 명품으로 치장하고 성형수술로 동안 외모를 가꾸더라도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다가서는 존재론적 불안은 해소되지 않는다. 자존감이 빈곤할수록 자존심만 커지고 과시를 위한 폭력, 즉 갑질이 발생한다. 갑질은 위계와 폭력으로 우월함을 인정받으려는 일종의 인정 구걸이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화려함을 끌어다가 현재의 인정을 강요하면 소위 ‘꼰대’가 된다. 그 바탕에는 극복되지 못한 존재의 허무함 즉, 죽음 불안이 깔려있다.

    죽음은 늘 인간에게 존재의 이유와 가치에 대해 묻는다. 죽음의 불안을 극복하는 것은 탄생 순간부터 인간에게 부여된 일생의 과업이다. 평소에는 생존과 성공을 위한 경쟁 속에서 죽음을 망각하며 살지만, 중년이 되어 늙어가는 모습에 죽음 불안은 초가을 아침 찬바람처럼 들이닥친다. 죽음 불안은 전염되기도 한다. 한 연구에서는 노인 곁에 있을 때 젊은이들의 죽음 불안이 커진다는 것을 알았다. 죽음 불안을 승화하는 사회 문화가 없다면 노인 혐오가 커진다. 마찬가지로 말기 환자 옆에서 가족들의 죽음 불안도 커진다. 무력감을 견디지 못해 환자의 자연스러운 죽음을 방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표적인 것이 마지막까지 음식을 강요하는 경우다. 식욕이 사라져야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은데 이를 용납지 않고 먹어야 산다며 음식을 강요한다.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환자를 위한다기보다는 강박적으로 자기 불안을 해소하려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의료인도 매한가지다. 말기 환자임을 알면서도 죽음이 다가오면 과도한 치료를 서슴지 않는다. 전문 용어로 ‘의학적 집착’(medical futility)이라고 한다. 죽음 앞에서의 무력감을 용납지 않으려 환자의 몸을 전쟁터로 항전을 벌인다. 가족과 의료진의 불안이 만나면 환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최선이라는 말로 포장된 연명 의료가 시행된다. 존재론적 불안이 큰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안정을 위해 타인을 소비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헤이즐의 부모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헤이즐과의 이별을 부정하기보다는 이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사회복지 상담사 과정을 밟는다. 그래야 어린 헤이즐의 죽음이 비극으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 불안에 휘둘리기보다 그 의미를 이해할 때 죽음은 삶에 길이 되어 준다. 그것이 특별한 삶이다.

     

     

    박중철 | 연세암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 없는 삶을 지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자, 인간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다. 주된 관심사는 젊음과 생동력을 추종하며 삶의 완성인 죽음의 가치를 소외시킨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생’(生)의 방향 상실이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다.

     

    기사원문보러가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304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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