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소식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나이듦, 질병, 죽음의 고통에 대하여
저는 요즘 한 종합병원에서 내과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외래 환자를 진료하고 상태가 중증이라고 판단하면 입원을 결정하여 치료합니다. 응급실을 경유하여 입원하는 환자들도 진료합니다. 전공의로 수련을 마친 지 대략 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90세 이상의 환자를 보는 건 매우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교적 흔하게 9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외래 진료실로 직접 오셔서 진료받고 다시 귀가합니다. 물론 거동이 힘들어 요양원이나 요양시설에 있어서, 보호자 분들이 대신 와서 투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70세를 의미하는 고희(古稀)는 이제는 드물지 않은, 병원에서는 아주 흔한 연령대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듦, 질병, 죽음의 고통
학생, 전공의 시절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병명을 붙여서(진단해서) 치료프로토콜에 맞추어 환자를 진료하는 공부와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호흡곤란을 호소할 경우 원인이 무엇인지 검사를 통해 그 원인이 심장인지 폐질환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 규명하고 이에 따라서 적절한 처방을 하게 됩니다.
고령의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젊은 환자들과는 양상이 다릅니다. 같은 증상이라도 젊은 환자와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서 발열 없이 패혈증이 진행되기도 하고, 심근경색이라도 흉통 없이 전신쇠약이나 의식 저하로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혈액 검사와 영상 검사에도 단순히 한두 개의 이상 수치만 보이지 않고 여러 이상소견이 동반됩니다. 그래서 수치나 검사 하나에만 의존할 수 없고 혈액검사와 영상 소견 등을 종합하여 임상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 배운 대로 진료하기에는 비전형적인 경우가 흔합니다.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여러 기저 질환으로 다양한 약물을 복용합니다. 조금 과장하면 약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10가지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약물들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하고 신장, 간기능 저하로 인해 약물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치료보다도 부작용이 없을 정도의 차선 치료가 더 적합한 경우도 많습니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Do not harm' 즉 '피해를 주지 말라'는 말을 되새기며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적정한 타협(?)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고령 환자들이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서 젊은 환자들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에 대형병원에서는 내과의 세부분과 중 노년내과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고령의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지금 행하는 의료가 도움이 될 건지를 자주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 행하는 의료의 목적이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데 있는지, 아니면 삶의 질을 유지하는 건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80대 환자가 암 또는 다른 중증 질환이 걸렸을 때 수술, 항암치료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할 건지, 적극적인 치료로 얼마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오히려 수술 항암치료 등의 치료를 견디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지 등을 고심하게 됩니다.
또한 인지기능이 저하된 환자, 연하장애(음식물을 삼키지 못하는 상태)로 경관영양을 하는 환자, 와상상태로 욕창과 반복되는 폐렴과 요로감염이 생기는 환자, 의식이 흐릿한 상태로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가 과연 그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지 의문이 계속해서 남습니다.
스스로 수족을 움직이지 못하고,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고, 삼키는 기능이 떨어져 입으로 먹지 못해 비위관(콧줄)으로 영양을 섭취하고, 치매로 본인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년까지 존엄을 지키면서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인 건지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서울의 어느 병원 진료실 모습 ⓒ 장영우
힘겹게 꺼내어 보는 질문들
의학이 발전하고 수명이 연장될수록 역설적으로 '살려야 한다'는 절대명제가 '살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연명치료 거부신청)를 작성한 사람들이 2025년 7월 말 기준으로 약 3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2018년 제도 시행 이후 연명치료 거부신청자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서만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종 과정에 들어가면 환자 본인의 의식이 흐려져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호자는 경황이 없거니와 '치료거부'는 불효라는 부담을 느낍니다. 의료진이나 보호자들이 먼저 연명의료 중단을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수액이나 산소, 승압제를 투여하며 그 임종시간을 좀 더 늦추게 됩니다. 결국 환자나 보호자에게 고통스런 시간만 연장될 뿐입니다.
인구가 고령화됨에 따라 향후 사전연명치료 거부의 범위에 대해 좀 더 활발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에서는 연명치료거부는 임종기 이전인 말기까지도 확장하여 적용하는 것을 고려해 본다고 합니다. 물론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진 않을 수 있습니다.
서양권 일부 국가에서는 말기 중증 질환에 대해 의사의 도움으로 자살할 수 있게 하는 조력자살까지 허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조력자살 도입은 거부감이 클 것입니다. 어쩌면 죽음이란 삶의 완성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너무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공의 시절 고령의 부모님을 둔 아들이 있었는데 중증 질환에 걸려 추가 검사와 치료를 권유하였습니다. 그런데 보호자 아들이 되물었습니다. '과연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정말 효도입니까?'라고 되묻더군요. 그때는 바로 답을 못했습니다. 지금은 평소 본인의 가치관, 가족들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치료에 최선을 다해 보자는 말보다는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고통을 줄이며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 보호자들은 불효했다는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11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장영우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선전위원회에서 활동 중입니다.
기사원문보러가기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85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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