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재택임종, 기적과 현실 사이
정성자 씨(1944년생)는 자신이 목격한 병원 임종에 대해 말했다. “병원에서 임종한다는 게 너무 처참해요. 남편 치료를 위해 5, 6년 병원에 다니다 보니 알게 됐죠. 임종 때 1인실이나 2인실에 가지 못하면 처치실로 가요. 환자가 돌아가시면 그 자리에서 시트로 둘둘 말아 데려가더라고요. 남의 손으로 그렇게 마지막 길을 가는 걸 보고 정말 가슴 아팠어요. 처치실에서 가족도 없이 임종하는 걸 보니, 저건 아니다 싶고 비참한 생각이 들었죠.” 이 경험은 그가 남편의 재택의료를 선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시한부 3개월 선고
정성자 씨는 1970년에 결혼하여 아들 삼 형제를 두었다. 남편 이봉섭 씨(1937년생)는 전자제품 공장을 운영했다. 사업은 한때 빚을 지는 등 부침이 있었지만 대통령상을 받을 정도로 운영이 잘 되었다. 남편은 60대 중반 무렵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이후 투병 10년 동안 정씨는 한결같이 남편 곁을 지켰다. 이봉섭 씨는 아픈 몸으로도 공장에 나가 연구 개발하는 일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5년 정도 지나면서 증상이 악화되어 입퇴원을 반복해야 했다.
“퇴원하고 얼마 안 되어 각혈과 혈변 증상이 생기면 또 병원에 가야 했어요. 이 검사 저 검사 하면서 너무 지치다보니, 나중엔 환자가 더이상 검사를 안 받겠다고 하더라고요. 말기 진단 때는 의사 선생님이 한 3개월 사시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간성 혼수(간 기능 상실이 생겨 정신이 혼미해지는 증상. 간 질환 말기에 자주 나타난다)가 오니까 병원에 있을 수가 없더군요. 간호사에게는 물론 아무한테나 막 욕하고 난리 쳤거든요. 한 병실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폐가 돼서 제가 퇴원을 요청했죠. 결국 선생님이 퇴원을 시켜주시더라고요.”
집에서 보낸 2년
퇴원해서 집에 오자 환자는 매우 편안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정성자 씨는 짠 음식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이를 본 자녀들이 말했다. “낫는 병이 아닌데 드시고 싶은 걸 드리는 게 좋겠어요.” 이후 남편이 원하는 음식은 무엇이든 다 만들어 주었다. 이봉섭 씨는 의사가 예측한 3개월을 훌쩍 뛰어넘어 2년이란 기간 동안 생존했다.
장기요양보호 2등급 판정 후에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았다. 요양보호사가 도착하기 전, 정씨는 남편의 몸을 깨끗이 닦은 후 소변줄을 끼워 소변을 배출시켰다. 환자가 기저귀를 자꾸 빼버리는 바람에 5시간마다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대변은 좌욕 후 소변기에 대고 바로 보게 하여 집안에 냄새가 배지 않았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곧 능숙해져서, 대소변 처리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았다. 배변이 원활해지자 간성 혼수도 없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썼고, 주말에는 자녀들이 아버지를 부축하여 거실에서 걷곤 했다. 봄 여름이면 정씨는 남편을 업고 마당에 내려가서 휠체어에 태웠다.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돌면 남편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병원에서 때마다 약을 처방받아와 남편에게 꼬박꼬박 복용하도록 했다. 필요할 때 간호사 방문을 요청해서 링거 주사를 맞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몇 번 없었다. 각혈 등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병원 갈 일도 없었다.
“병원에선 아침마다 간호사들이 ‘대변 몇 그램 봤냐, 소변 몇 그램 봤냐’ 이렇게 체크 하거든요. 그러면 환자가 성질내고 그랬죠. 게다가 몸무게 잰다고 자꾸 일어나라 하지, 당신 먹고 싶은 것은 못 먹게 하지, 그러니 짜증을 많이 냈어요. 집에 있게 되면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병원 침대를 임대해서 그 옆에 내 침대를 놓고 누워 잤죠. 우리 집 양반이 조용한 사람이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무척 편하게 가셨죠.”
임종, 119, 사망진단서
“남편은 평소에 웬만한 대화는 했고 좋아하는 음악 틀어주면 같이 웃고 그랬어요. 그런데 한 2, 3일 눈을 잘 안 뜨고 음식을 못 넘기더라고요. 임종 전날은 완전히 달랐어요. 안 되겠다 싶어 새벽에 애들한테 전화해서 출근하지 말고 집으로 오라고 했죠. 집에 온 애들이 119를 부른대요. ‘119 부르면 복잡한데 어떻게 할까?’하고 망설이다 결국 불렀죠. 그들이 임종 판정을 내렸어요. 집에서 오래 아프셨냐고 묻더라고요. 그렇다고 하니 병원에 어떻게 옮길 거냐고 해요. 사망한 분은 119를 탈 수 없대요. 상조회사에 연락하고, 제가 준비한 옷으로 싹 갈아입힌 후 응급실로 모셨어요.”
의사는 의료기록을 살핀 후 바로 사망 진단서를 써주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검안도 필요 없었다. 2012년 10월 26일이었다. 정성자 씨는 남편의 임종 때 당황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왔다. 주변에서는 그를 보고 모두 놀라워했다. 담대하게 일 처리를 해냈기 때문이다. 입관 후 그는 자녀들에게 모두 나가 있으라고 일렀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내가 제사 모실 때는 절을 못 하니까 여보, 살았다고 생각하고 절 받으세요.” 그는 한 번의 큰절과 함께 남편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죽음 준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잘한 건 병원에 의지하지 않은 거예요. 임종 때 식구대로 와서 손이라도 만져보고 했으니까요.” 장례 후 정성자 씨는 의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 의사가 말했다. “고인 생전에 119 불러 병원에 오지 않으시길 잘했습니다. 오셨으면 또 이 검사 저 검사하며 고생하셨을 거예요. 환자가 고통 겪지 않도록 판단을 잘하셨어요.” 정씨는 2025년 11월,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사무실을 찾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위해서였다. 오래전부터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편을 보내고 난 뒤 이 생각은 더 확실해졌다. “아파서 오래 누워있는 건 삶이 아니에요. 내 발로 화장실 다니고 내 발로 가서 먹고 싶은 것 사 먹지 못하는 건, 절대 산 게 아니에요. 이제 저에게는 죽음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결혼도 해봤고 아기도 낳아봤고, 잘 살아도 봤고 못 살아도 봤어요. 이 땅에서 누릴 것 다 누렸는데 남은 삶이 길면 뭐 하나요? 그냥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후, 정성자 씨는 이를 노인회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많이 소개했다. 그는 나라에서 재택임종에 대한 장려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변 지인들 90%는 집에서 죽고 싶어해요. 환자 본인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가정이나 국가에 도움이 되죠. 우리도 병원 드나들면서 5년간 1억 넘는 비용을 썼어요.” 간병 당시, 정성자 씨는 훗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남편과 나이 차가 있어 체력이 받쳐주었고, 정신력도 뛰어난 그였기에 모든 일이 가능했다. 그가 재택의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배우자의 건강’이었다. 자신이 했던 간병은 배우자가 아니라면 자녀라 해도 어림없는 일이라고 했다.
혼자 사는 가구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정성자 씨가 말한 가족 간병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이런 의문을 품고 찾아본 것이 ‘재택의료센터’였다. 재택의료센터란 (한)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가정을 방문하여 방문진료, 방문간호, 지역사회 돌봄서비스 연계를 제공하는 곳이다. 거동이 불편해서 의료기관에 내원하기 어려운 장기요양 수급자(1~5등급)가 대상이다. 방문진료가 일회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면, 재택의료센터는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면서 의료 범위를 넘어서는 영역까지 확장한다. 정성자 씨 인터뷰를 마친 후,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재택의료센터 ‘서화한의원’을 찾았다. 집에서 임종하기 위한 조건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였다.
재택의료센터를 찾아서

노태진 원장은 고양시에서 15년째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방문진료를 시작한지 3년차이고, 재택의료는 4개월째 접어들었다고 했다. 노원장에게 재택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제가 느낀 가장 큰 불만은 의료의 변질과 왜곡이었어요. 의사의 역할이 넓고 많은데 너무 한쪽으로 몰려 있지 않나 생각돼요. 투약과 시술 아니면 의사가 할 일이 없다는 식으로 왜곡돼 있거든요. 제대로 된 의료체계는 시술의 적합성에 대해 충분히 고민해야 합니다. 미래의 한의사가 해야 할 일이 돌봄과 재택의료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의학은 원래 노쇠와 식욕 부진, 수면 장애 등을 다뤄왔으니까요.”
재택의료 때, 어느 시점이 되면 가족과 의료진은 환자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망 징후가 뚜렷이 보일 때 노원장은 이를 가족에게 알린다. 사망진단서 준비본까지 마련해두기도 한다. 진료 기록이 있고 인근 경찰서와도 연계되어 있다면, 임종 때 사고로 처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는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왜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 병원 말고 다른 선택지가 거의 없을까? 병원 치료 단계를 넘어간 환자가 갈 곳이 없으면 계속 병원에 남게 된다. 과잉 치료가 이어지고 의료비 대부분을 마지막 몇 달간 쓴다. 한편 재택임종을 하면 통증이나 호흡 곤란 등에 대해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면서,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재택임종을 제대로 돕는 재택의료센터는 매우 드물다.
노원장이 말하는 재택의료의 방향은 무엇일까? “한의학과 양방의 강점을 다양하게 살려야 해요. 원래 목적이 다학제 협력이거든요. 재택을 잘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독점하면 안 됩니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기타 다른 돌봄과의 연계가 훨씬 더 중요해요. 경험이 짧고 좁게 볼수록 의사가 많은 걸 해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2026년 3월부터 통합 돌봄법이 시행돼요. 지자체 조례로 정하고 담당 부서를 만들어 재택의료가 잘 진행되도록 강제하게 되죠.”
돌봄 통합이 아닌 통합 돌봄으로
통합 돌봄을 뒤집으면 ‘돌봄 통합’이 된다. 이는 돌봄을 합쳐버리자는 생각으로, 매우 쉬운 발상이다. 방문 간호센터, 의료기관, 재가 복지 센터 등을 통합해 버리면 된다는 생각은 진정한 통합 돌봄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의사 한 명과 간호사, 사회복지사만 움직이는 작은 개념으로 축소된다. 본래 취지는 인간이 나이 들고 병드는 괴로운 현실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여러 분야가 힘을 모아 돕는 것이 ‘통합 돌봄’이다. “돌봄 통합을 해버리면 기관끼리 경쟁해야 해요. 그런데 통합 돌봄은 ‘통합 돌봄 협의체’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거죠. 함께 모니터링하고, 반칙하는 데가 있으면 지적도 하고요. 정치적으로 돌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지자체장을 뽑고, 공약이 없는 분한테는 요청을 해야죠. 시의원 중에 관심 있는 분한테도 계속 요구하고요. 아직 시범사업이라서 그렇지, 민간에 맡겨버리면 자본의 힘으로 다 찍어 누를 수 있어요. 대기업이 돌봄 시장에 작정하고 들어오면 모두 흡수해버리겠죠.”
노원장은 고양시 통합돌봄의 방향에 대해 힘주어 말한다. 기관들이 각자의 사업체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하지만, 협력이나 연대와 관련한 내용을 미리 조례 안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 역량이 힘을 발휘하려면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인 조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에 힘을 받아 고양시의 통합 돌봄이 뻗어 나갈 수 있다.
사망진단서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

"입맛이 없고 살이 빠지고 무기력해요." 81세 남성의 호소였다. 누구도 이분이 소화 안 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노원장이 하나하나 질문해보니 음식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다고 했다. 마침내 의미 없는 제산제 복용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중지시켰더니 바로 식욕이 돌아왔다. 그간 여러 병원에 다니면서 상담해도 해결 못했던 일이었다. 이런 문제를 찾아내려면 환자의 집으로 가야 한다. 식탁을 살펴보고 냉장고와 서랍도 열어볼 수 있어야 한다.
83세 여성이 몸이 붓고 힘들다며 한약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재택의료를 갈 때마다 노원장에게 단백질 음료를 권하는 분이었다. 그분은 평소에 늘 단백질 음료를 마신다고 했다. 하루에 몇 개 드시냐고 물었더니 매일 세 개씩 마신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노인들은 콩팥에 부담이 된다. 더이상 먹지 마시라고 했다. 얼마 후 진료 때 반응은 놀라웠다. “선생님, 온몸에 붓기가 싹 다 빠졌어요!”라면서, 그는 고맙다는 표현을 넘어 진심으로 노원장을 축복했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노원장은 사망진단서에 대해 말한다. “갑자기 임종자가 오면 사인(死因)을 쓰기가 무척 곤란해요. 부검하지 않는 이상 쓸 게 없어요. 의학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분을 많이 알수록 사인을 쓰기 수월한 거죠. 마지막에 숨을 못 쉬고 돌아가셨다고 해서 호흡 곤란이라고 쓰면 안 되잖아요. 사망진단서를 제일 잘 쓸 수 있는 이는 환자를 지속적으로 봤던 사람이에요. 지금 재택 관리 받고 있는 열여섯 명 중에 예견되는 분이 있어요. 급격한 변화 없이 끝까지 가게 되면 저희가 임종까지 하고 진단서를 발행하는 거죠.”
황홀한 죽음은 가능한가
노원장의 어머니는 외할머니 돌봄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이를 보는 노원장의 마음도 편치 않다. “여성의 돌봄 집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괴로울 분이 한두 분이 아니구나, 온 사회가 엄청 괴롭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돌봄이 가족에게 집중되지 않으려면 시스템이 지원 해줘야 해요. 그러지 않고는 주 보호자가 독박을 쓰는 겁니다. 상처가 서로 많더라고요.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고생은 많이 했는데 서운한 말도 정말 많이 들어요.”
노원장은 경관 영양(콧줄)이 의료상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콧줄 자체는 연명의료에 포함되지 않지만, 이를 택하면 연명의료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환자마다 콧줄이나 소변줄의 필요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하는데 고민 없이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 부분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액 역시 들어가면 몸이 붓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꼭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
임종기에 엔돌핀 폭발을 경험하면서 황홀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노원장은 말한다. 우리가 그 기회를 박탈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질문한다. 환자의 신체 기능이 다해 음식을 못 삼키고 말라가는 과정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인체의 신비는 고통만큼 엔돌핀을 꽉꽉 넣어주게 되어있다. 자연스런 죽음은, 빛을 향해 나아간다거나 신비체험의 느낌이 들거나 하는 식으로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콧줄을 끼워 넣고 수액으로 몸을 퉁퉁 불리면 그런 죽음이 가능할까? “식욕이 사라져서 돌아가시는 과정을 잘 도와야 해요. 진정 환자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핵심내용이 돼야 합니다. 환자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 가면서, 의료진의 관찰 하에 죽음을 향해 가는 건 존엄한 일이에요.” 노태진 원장은 자신이 정책을 만드는 사람도, 사회적 활동을 크게 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콘텐츠 생산자, 이야기를 많이 모아서 이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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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자 씨의 노력은 평화로운 재택임종이라는 기적을 낳았다. 그러나 대부분 의료기관이나 요양원 등 시설에서 힘겹게 마지막을 맞는다. 이 괴리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한쪽 끝에는 ‘시설의 죽음은 무조건 나쁜가?’라는 질문이 있고, ‘재택 고독사는 부정적인가?’라는 질문이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의 저자 우에노 지즈코는 ‘살아 있는 동안 고립되지 않는다면 고독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 가족 간병에 기대지 않고도 시스템의 도움 속에 편안히 임종하는 사회, 태어남이 축복인 것처럼 죽음도 위엄을 잃지 않고 맞을 수 있는 사회, 이를 꿈꿔도 될까? 정성자 씨와 노태진 원장의 헌신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다. 정책과 시스템으로 답하는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
*이 내용은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에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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