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이렇게 봄을 시작해도 되는 걸까요?”
바람의 결이 달라지는 3월의 길목, 전시 공간 ' 엘리펀트프리지' 에 모인 이들이 나직하게 건넨 물음입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상실의 적막 속에 있거나,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의 터널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봄은 반가움보다 미안함으로 먼저 다가오곤 합니다.
지난 3월 1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이번 전시는 차가운 겨울 끝자락 같은 우리 마음의 풍경을 정면으로 응시했습니다. 저는 이 전시의 첫날 진행을 맡았습니다. 세 분 작가의 숭고한 수행을 통해 슬픔을 외면하는 대신 삶의 일부로 초대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나누었던 그 뜨거웠던 기록을 전합니다.
🎨 세 명의 작가가 건네는 위로의 언어
1. 이자용 작가 : 무너지지 않는 곁, ' 자기 돌봄' 의 등불


검은 돌 위에서 유령처럼 일렁이는 불꽃.
이자용 작가는 무력함 속에서도 끝까지 곁을 지키는 돌봄의 현장을 시각화했습니다.
"돌봄의 최우선은 나를 돌보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잘 돌봐야 타인에게도 다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에게 그림은 복잡한 감정을 정돈하는 치유였고,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먼저 안아주는 것이 진정한 돌봄의 시작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2. 박은영 작가 : 1,800 번의 손길로 빚어낸 '영원’

뉴욕의 현대미술 최전방에서 활동하던 작가가 전통 옻칠에 매료된 것은 가족을 잃은 후였습니다. 찰나의 허무를 영원으로 치환하기 위해 2,000년을 견디는 옻을 선택했습니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1,800번 이상 옻을 쌓아 올렸습니다."
겹겹이 쌓인 시간 속에서 사물의 단단한 경계는 흐려지고, 상실의 아픔은 어느새 시간의 뒤편으로 고요히 물러나 영원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3. 허현주 작가 : 사라짐 속에서 발견한 '찰나의 드러남’


부재의 시간 속에서 소중한 존재들이 망각의 강으로 녹아 흐르는 과정을 응시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사라짐이 곧 끝이 아님을 말합니다.
"무언가 사라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 순간의 ' 드러남' 을 의미합니다."
세상 모든 것은 찰나에 존재할 뿐이라는 깨달음은, 역설적으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풍경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 완벽한 돌봄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나'
전시 기간 중 우리가 마주한 가장 큰 감정은 ' 죄책감' 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화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죽음의 곁에 머물다가도 다시 현실로 돌아와 삶의 균형을 잡는 것, 즉 나를 잃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요.
참가자들은 완벽한 돌봄보다 ' 지속 가능한 나' 로 살아남는 것이 진정한 웰다잉임을 확인했습니다. " 이렇게 봄을 시작해도 되냐" 는 물음 속에서, 이들은 이미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으로 마음의 겨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글쓴이 : 윤서희 강사(사실모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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