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오래전에 작고하신 최인호 작가는 무척 맛깔스럽게 글을 쓰신 분으로 기억된다. 2012년 무렵 천주교 서울 주보에 매주 그의 글이 실렸었는데 당시 성당에서 주보가 모자랄 정도로 인기가 많았었다. 주보에 실린 ‘엿가락의 기도’라는 제목의 글에서 암투병중인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었는데 말미의 내용은 이렇다.
“주님, 이 몸은 목판 속에 놓인 엿가락입니다. 그러하오니 저를 가위로 자르시던 엿치기를 하시든 엿장수이신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주님께 완전히 저를 맡기겠습니다. 다만 제가 쓰는 글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의 입속에 들어가 달콤한 일용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엿장수의 이름으로 바라나이다. 아멘.” 그는 이 기도 속에서 80% 정도의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하였다.
이 글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내용은 그가 ‘엿가락의 기도’ 속에서 80% 정도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웰다잉 강의를 하면서 참가하신 분들에게 지금 가장 바라는 소망이 무엇인가를 질문한 적이 가끔 있었다.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답은 저녁에 잠자듯이 하늘나라 가는 것이라는 내용이 무척 많았다.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한다.
죽음을 맞이할 때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은 모두의 공통된 소망이라고 본다. 특히 고연령의 어르신들에게는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 하는 명제가 의식속에 늘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맞이하는 일에서 비록 육신은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면 엄청난 축복이 되리라고 본다. 최인호 작가처럼 기도 속에서 평화를 누리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법적인 문서로 남기는 것도 죽음준비 중의 하나이다.
내가 현대의학으로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고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판정을 받은 시기가 왔다면 나는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장치를 해서 고통을 가중하는 상태에서 조금 더 살기를 원하는가? 내 육신의 입장에서 절대로 옳은 일이 아니다. 환자를 편하게 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명의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조금 더 살려고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공통된 바램인 것 같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자신의 죽음맞이에서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사전연명의료를 이해하고 자신의 뜻에 따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분들은 비교적 담담하고 편안함 모습으로 보인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가시는 분들의 마음은 추측컨대 숙제를 하나 마친 것처럼 다소 가볍고 후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등록증을 받은 지인들을 만나 사전연명의료에 대한 내용을 듣고 작성하러 왔다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평상시에 드러내놓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인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나 했다는 만족감이 들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한 친구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봉사를 하고 있다고 하니 좋은 일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도 작성하겠다고 해서 작성하였다. 다른 지인도 소개해 주었다.
상담을 하면서 만난 분이나 주변사람들로부터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가끔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신 분들에게 나중에라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데 다소라도 도움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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