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입춘(立春), 강릉
기쁨가득사회적협동조합(대표 정광민, 이하 ‘기쁨가득’)을 방문한 날은 2월 3일, 긴 설 명절 연휴가 끝나고 한 주간이 시작하는 월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이 입춘(立春)이라고 합니다. 추운 날씨에 겨울이 다시 시작하는 느낌인데 끝이라구요? 이제 봄이 온다구요? 벌써 입춘(立春), '설 립(입)(立) 봄 춘(春)', 봄을 세운다라니 뭐라도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오전 일찍 강릉행 KTX에 올랐습니다. 탐방을 핑계 삼아 타는 KTX 덕분에 우리나라를 한바퀴 도는 셈입니다. 며칠 전부터 입춘 한파라고 방송에서 엄청 겁을 주었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도 하고 여행도 하고 좋은 분도 만나고 일석삼조(一石三鳥)로구나! 들뜬 마음으로 빈자리 없이 꽉 채워진 실내를 둘러봅니다. 제 앞자리는 친구들이 오랜만에 나들이를 가는 모양입니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끊임없이 유쾌한 수다가 이어집니다. 차창 밖 아직 남아있는 눈을 벗 삼아 여행객들의 설레는 마음에 같이 취하면서 강릉으로 달려갑니다.
강릉역에 도착하니 이혜안 사무국장이 마중을 나와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 제안사업 평가회 때문에 보문로 사무실에서 뵌 적이 있기에 낯설지 않고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20분 후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기쁨가득한 사무실
기쁨가득사회적협동조합은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어린이집이었는지 빌딩 입구 벽면에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모형이 서 있고 동물들이 가득한 나무 조형물도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웃음이 절로 납니다.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행정실로 사용되고 있는 사무실로 우선 들어갔습니다. 조용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무실은 매우 분주합니다. 정광민 대표를 비롯하여 여러분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처음 본 분들이지만 환한 웃음으로 반가운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오전 팀장님이 사무실로 들어선 이혜안 사무국장에 이것저것 물어보며 확인합니다(기쁨가득에서는 노인일자리 상담사들을 위해 오전 오후 1명씩 2명 팀장이 상담사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증서 설치방법도 물어보는 거 같습니다. 순간 인증서 설치를 위해 방문하시는 상담사 선생님들에게 세심하게 안내하는 권도훈 사무국장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구나 ^^
오후 팀장님도 오셨습니다. 이날 오후 1시 노인일자리 첫 번째 상담사교육이 있어 어느 때보다도 사무실이 바쁘게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정광민 대표와 이혜안 사무국장은 물론, 오고 가며 바쁘게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활기와 웃음, 그리고 열정이 가득한 곳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기쁨이 가득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는 이혜안 사무국장의 바램처럼 사무실은 기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후 1시 상담사교육을 진행하고 점심식사를 하러 나섰습니다. 동네 맛집 백반집이라고 합니다. 서울과는 달리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 길을 정광민 대표 이혜안 사무국장과 함께 걸었습니다. 조용한 강릉 시내, 살짝 춥지만 맑은 겨울날의 산책은 참 기분을 좋게 합니다. 백반집 주인의 맛깔스러운 이야기와 소문대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후 강릉이 더 좋아졌습니다.
기쁨가득에서 하는 일
2016년 설립한 기쁨가득사회적협동조합에서 현재 중점사업으로 하고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노인바우처사업 ‘황혼기마음치유서비스’입니다. 이 사업은 2016년부터 강릉시 바우처사업으로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으로서, 강릉시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노인자살예방을 위한 다차원적 정서지원 서비스(죽음태도검사, 문화여가나들이, 집단활동, 심리상담 등)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2012년 당시 노인자살률 전국 1위였던 강릉시 상황을 보고 자활사업기관에서 일하면서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된 이 국장이 자살예방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이 사업의 시작이었고, 후에 강원도사회서비스 대상을 받으면서 2013-2015년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게 됩니다. 이 국장은 이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자활사업기관에서 독립하여 기쁨가득협동조합을 설립합니다(이혜안 사무국장은 초대 대표로서 2024년 정 대표가 신임 대표로 취임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수고한 기쁨가득의 산 증인입니다. 2018년 기쁨가득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조직을 변경합니다).
둘째, 일상돌봄-심리지원서비스입니다. 2024년 7월부터 시작한 이 서비스는 혼자 일상생활이 어려운 가족을 돌보는 가족돌봄청년(13세-34세)과 질병 고립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청·중장년(40세-61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국장은 특히 알콜중독과 정신장애로 돌봄이 필요한 중장년 세대들의 고독사 예방에 관심을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 사업입니다. 2019년 시작한 이 사업으로 기쁨가득은 큰 성과를 이루고 강릉시 대표 등록기관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2024년 기쁨가득이 수행한 등록 건 수는 총 4,624건에 이릅니다. 2024년 강릉시 인구가 20.77만명에 불과한 것을 볼 때 참으로 놀라운 실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국장은 16명의 노인일자리 상담사와 14명(강릉 7명, 속초 7명) 기쁨가득 상담사들의 열정을 그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식당에서, 시장에서, 가는 곳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의향서 등록을 권유하는 적극성과 상담사 일을 소중한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이와 같은 실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기쁘게 열심을 다하고 있는 걸까요?
정 대표는 이 외에 생활유품정리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사업이 단순히 돌아가신 후의 유품정리 뿐 만 아니라 생전 본인이 소중하게 여기는(애착하는) 생활용품들을 정리(버리기 나눠주기 물려주기)하는 데까지 사업의 내용을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 대표는 유품 정리, 죽음 관련 상담, 그 결과로서의 의향서 작성, 건강한 장례 등으로 연결된 웰다잉교육을 사업방향으로 열거하며, 기쁨가득이 강릉지역의 대표적인 웰빙, 웰다잉 전문기관으로 자리잡기를 소망했습니다(그는 강릉시 시의원 출신으로 다양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이혜안 국장의 죽음과 삶 이야기
이제 기쁨가득을 세우고 일으킨 이혜안 국장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사무실에 단 둘이 남았을 때 여느 인터뷰 때처럼 왜 죽음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잠시 멍한 채로 있어야 했습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휩쓸었습니다. 하루 900ml 가까운 폭우가 내리면서 강릉지역은 피해가 특히 더 심했죠. 그 해 9월, 추석날도 태풍 영향으로 비가 엄청 내렸고, 이 국장 가족은 명절 아침 빗길 교통사고로 딸을 잃었습니다. 아들은 살아 남았지만 당시 7살이었던 딸은 그 자리에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딸을 잃은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목놓아 우는 일과 오직 ‘죽음’에 전념하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을 경험하면서 점차 삶의 평화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딸의 시신을 꺼려하여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찰나의 마음은 오랫동안 죄책감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그는 자아초월상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05년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자아초월상담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딸의 마지막 시신을 마주하지 못했던 ‘꺼려짐-죄책감’을 다루게 됩니다. 로고테라피(의미치료)-역설의도 기법을 통해 엄마를 향한 딸의 마음을 온전히 느끼는 경험을 하면서 비로소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이 국장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딸의 죽음 이전에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항아리 안에 갇힌 세상이 삶의 전부라고 믿고 살았는데, 딸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하늘을 보게 되었다. 항아리 밖의 세상은 무한하고, 더 이상 삶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자유한 세상이다.”라고요.
2007년 이 국장은 각당복지재단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서 주관한 죽음준비교육지도자과정 1기 교육을 이수합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죽음을 공부하는 이들을 만나면서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과 홍양희 회장님으로부터 우리나라 웰다잉 문화 정착에 대한 열정을 배우게 됩니다. 이 소중한 인연으로 이 국장은 강릉지역 웰다잉 문화 확산을 위해 노인 대상 정서지원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2016년 ‘건강한 삶, 순환(나눔)의 삶, 죽음을 준비하는 삶-웰다잉’이라는 비전으로 기쁨가득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언젠가는 온 지역사회가 삶과 죽음의 융합을 통해 기쁨이 가득한 공동체가 되기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사실모에 대한 기대
기쁨가득은 2024년 사실모의 보건복지부 사업 ‘위풍당당한 노년의 주도적 삶의 위한 돌봄 소원 배달학습 프로젝트’에 지역협력기관으로 참여했습니다. 사실모 이야기를 꺼내자 정 대표와 이 사무국장은 여러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노인바우처사업 등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은 사실모의 돌봄 소원 배달학습 사업의 전국화, 사실모 중심의 웰다잉기관 전국 네트워크 구축, 기존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차별화한 교육 등을 제안합니다. 사실모 전국사업으로 지역사회 웰다잉기관과 공생하고 재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 등도 공유했습니다(이 지면에서는 밝힐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들도 심도깊게 나누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모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설립 10년이 지난 사실모가 앞으로 해야 할 과제가 명료해집니다. 지금까지 잘해 온 사실모, 앞으로도 잘 할 수 있겠지요? 힘내야겠습니다.
돌아오는 길, 이왕 강릉에 내려왔으니 바다를 보고 가고 싶다고 하자 이 국장이 일부러 돌아 경포대를 갑니다. 어린애같이 겨울 바다를 바라보면서 즐거워합니다. 강릉이 참 좋습니다. 또 와야겠습니다. 정 대표님, 이 국장님 많이 배우고 올라갑니다. 감사합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2월은 항상 애매한 거 같습니다. 새하얀 한겨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사한 꽃이 피는 것도 아니고, 새 학기 시작의 설레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2월은 늘 그렇게 제게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바뀔 거 같습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는 것을 축하하며,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땅 속에서 치열하게 꿈틀거리고 있을 생명체처럼, 지금은 힘든 환경에서 웰다잉사업을 하고 있는 사실모가, 기쁨가득사회적협동조합에게 봄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함께 하면 됩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사진제공 : 기쁨가득사회적협동조합)
기쁨가득사회적협동조합 BI
어르신들의 웰다잉을 위해 일한다.
삶의 충만한 기쁨과 행복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다.
왼쪽나무 줄기는 생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삶을 나타내며
오른쪽나무 줄기는 죽음은 또 다른 시각으로 새싹을 의미한다.
죽음은 현생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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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3-646-9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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