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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남]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1 - "엄마, 과한 치료 안했어!"(정은주 작가)
    2025-07-29 20:14:45
    관리자
    조회수   239

    엄마, 우리 과한 치료 안 했어!

    김경아 씨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딸 희연 씨 꿈에 엄마가 나타났다. 
    병원 침대에서 일어난 엄마를 보고 희연 씨는 깜짝 놀라 말했다. 
    “엄마, 우리 과한 치료 안 했어!”
    꿈속에서도 경아 씨는 훗, 웃으며 답했다. 
    “우리 가족은 그럴 줄 알았어.”
    2025년 2월 17일, 김경아 씨는 만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4개월 남짓 지난 6월 24일, 배우자 김종호 씨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내가 경아 씨를 입양가족 모임에서 알게 된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근 몇 년 동안 그와 나는 아동권리보장원 강사로 활동하며 더욱 가까워졌다. 죽음에 이르기 얼마 전까지 서로 내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직 내가 그의 임종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느끼며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캠퍼스 커플, 이어진 병마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은 조용하고 널찍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저는 김종호라고 해요. 김경아의 남편으로 31년 4개월간 결혼생활을 했고 세 딸을 키운 아빠입니다. IVF(한국기독학생회,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라는 단체에서 작년 4월까지 일했습니다. 현재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북아 화해포럼(동북아의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하고, 평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운동) 리더로 활동하고 있어요. 창업 준비 중이기도 합니다.” 아내 김경아 씨는 작가이자 강사로 자신의 유산을 남김없이 전한 사람이다. 두 딸을 낳고 막내를 입양한 후, 입양교육 강사와 성교육 강사로 활동해왔다. 지은 책으로 『너라는 우주를 만나』,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 『청소년이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 (이상 IVP) 등이 있다.
    종호 씨는 연세대 행정학과 재학 시절, 과 후배이면서 IVF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던 김경아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93년에 결혼했다. 경아 씨는 대학 1학년 때인 1988년, 류머티스 관절염이 발병했고 평생 통증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증상에 기복이 있어 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최근 2년 들어서 갑자기 악화되었다. 2023년에는 A형 독감으로 죽을 고생을 했고, 이어 대상포진까지 왔다. 신경차단술(통증 완화를 위해 신경 주변에 약물을 주입하는 비수술적 치료법)을 다섯 번이나 받았지만 통증은 잘 잡히지 않았다. 그해 말에는 심각한 자가면역성 간염 진단을 받았고, 고단위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는 등 장기 입원 치료를 했다. 이듬해 12월, 원인 모를 발열로 다시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혈액검사와 CT로도 원인을 찾지 못했는데, 복기해보면 당시 장 천공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위험성을 의료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5주 만에 퇴원했지만 말초신경염 진단에 따라 항암치료가 예정돼 있었다. 집에서 설을 보내고 재입원하기로 한 날, 갑자기 경아 씨의 상태가 나빠졌다. 그날 밤, 장 천공 응급수술은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올해 1월 30일이었다. 이후 경아 씨는 중환자실에서 1주일, 일반병실에서 12일을 견디다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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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엔딩노트

    코로나 기간인 2021년, 경아 씨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사무실에서였다. 그 배경에는 고통이 심할 때 ‘하나님,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던 오랜 시간이 있었다. 죽을 때가 되면 연연하지 않고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평소 가족, 특히 남편을 의식화(?)시키기 위해 경아 씨는 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일종의 유언, 즉 엔딩노트도 컴퓨터에 작성해놓았다. 최종 업데이트 시점은 2024년 6월이었다, 임종기에 벌어질 일들을 예상하여 자신의 뜻을 상세히 정리해놓았으니, 나중에 때가 되면 읽어보라고 했다. 당시 종호 씨의 생각은 어땠을까? “워낙 성실하게 대비하는 성향이라 이것도 벌써부터 준비하는구나 싶었지요. 몇 년 안에 닥칠 일이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하지만 나의 일이라면 나도 아내와 같은 길을 가겠구나 싶어서 거부감은 없었어요.”
    임종을 목전에 두고 읽은 아내의 엔딩노트는,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 의향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보내고 싶지 않아 망설이는 순간이 많았어요. 좀더 치료하면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의사는 살려야 하는 게 기본값이니 치료를 시도했고요. 그럴 때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분별하는 데 아내의 뜻은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10년 전, 경아 씨의 친정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을 때 응급실에서 중대한 결정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심장이 멈췄던 시간이 길어서 장기손상이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심폐소생술로 심장 박동이 돌아오긴 했으나 심장 스텐트 시술(좁아진 관상동맥에 작은 금속망 구조물을 삽입하여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돕는 치료법)을 해도 회복은 어려웠다. 당시 경아 씨는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적극적으로 가족을 설득했다. 죽음과 연명의료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자기 생각을 확실히 정리한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 했지만 결국 경아 씨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그때 스텐트 시술을 했더라도 중환자실에서 기계에 의지하는 삶이 기약 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당시 의사는 ‘자녀의 도리’ 운운하며 나무라기도 했다. 그러나 경아 씨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했고, 아버지는 몇 시간 후 돌아가셨다. 종호 씨는 아내의 임종을 맞으며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통증에 대하여

    김종호 씨는 아내가 겪어온 고통에 대해 SNS에 이렇게 적었다.

    아내는 특히 최근 2년간 많이 아팠고 할 수 없이 많은 용량의 스테로이드를 써야 했습니다. 급한 불을 끄는데, 그게 아내의 몸을 근본적으로 병들게 했습니다. 그간 아내는 극도로 저하된 몸 상태를 품고 일상을 살았습니다. 원래도 아픈 몸으로 씩씩하게 살던 사람이니, 저는 그냥 조금 더 아픈가보다 싶었지만 사실 아주 심각하게 아픈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던 아내가 어느 날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매일 저녁 ‘하나님, 저를 데려가 주세요’ 기도해." 

    소장 출혈이 시작되면서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밤이 지났다. 토요일(2/8)이 되자 경아 씨는 종일 통증과 씨름하면서도 가족, 지인을 만나고 통화나 문자에 답했다. 와중 다른 이들의 상황과 안부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혹시 살아나가면 생전 장례식 자리를 갖고 싶다고 했다. 안되면 줌으로 사람들과 연결해서 이별하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종호 씨는 경황없는 중에도 계속 소식을 써내려갔다.

    소장 출혈은 계속 됐습니다. 그리고 쩔쩔매게 아픈 통증도 중단 없이 이어졌습니다. 겪어보니 본인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사람도 피가 마르는 게 통증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모르핀을 투여받는 중입니다. 그게 시간당 4ml에서 8ml로, 그리고 의료진과 상의 후 10ml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통증에 시달려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안정제까지 투여해 아내가 잠들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의식이 몽롱해지고 더이상 대화가 안 되는 수준의 상태가 되었는데도, 존재의 심연에서 나오는 고통의 신음이 아내의 입에서 지속적으로 흘러나옵니다. "아이고 아버지". 아내가 입에 달고 있던 기도는 안정제 투여 후 절규에 가까운 신음으로 바뀌고, 곁을 지키는 아이들에게 이 장면은 고문과 같은 형벌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나흘은 일반병실에 있으면서 호스피스 협진을 받았다. 호스피스는 보통 최대치의 진통제를 쓰지만 일반병실은 보수적으로 쓴다. 두 곳에 걸쳐 있다 보니 고민거리는 계속됐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김종호 씨에게 당시의 선택에 대해 물었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 만큼 후회 없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그는 수술 다음 날 투석을 시작한 것에 대해 말했다. “수술 후 열두 시간도 안 되어 신장 기능이 거의 멈춰가는 상황이었어요. 투석을 안 하면 중환자실에서 이별할 것이 뻔했지요. 투석을 통해 시간을 벌고, 이별을 하더라도 일반병실에서 하고 싶었어요. 아내는 그 결정으로 일단 중환자실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1인실로 온 후 자유로운 면회가 가능해졌다. 1인실을 쓰기로 한 것 또한 두고두고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여겼다.
    또 한 가지는 수혈 중단 결정이었다. 수술로 만든 장루(인공항문)에서 배설물이 아닌 출혈이 시작되었다. 의료진은 바로 수혈을 시작했다. 그러나 수혈량보다 출혈이 더 많아 밑 빠진 독과 같은 형국이 됐다. 문제는 그동안 경아 씨가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자녀들은 더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호소했다. 의료진과 아빠가 결정해서 제발 엄마의 고통이 연장되지 않게 해달라고. 종호 씨는 마음 한구석에 어떻게든 살려내고 싶은 유혹이 있었지만 결정을 해야 했다. 경아 씨는 침상에서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다시 한번 서명했다. 그의 뜻은 분명했다. "다시는 중환자실 안 가, 연명의료는 하지 말아줘." 자신은 이제 주님 곁으로 가는 길을 떠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종호 씨는 아내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어요. 그러나 살려내서 아내에게 고통의 무게를 감당하라는 건 내 욕심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남은 가족들의 맘은 찢어지더라도 아내를 위해서는 보내주는 게 맞다고 결론 내렸어요.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려 해요.” 종호 씨 눈에 굵은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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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 덕분에 내 인생은 충만했어

    일반병실에서 지냈던 열흘 남짓은 아프지만 한편으론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종호 씨는 몇 가지 대화나 상황, 임종 순간을 영상으로 남겼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대상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너무 잘한 일이라 생각해요. 소위 임종면회를 여러 번 했는데 아내가 그 순간에도 유머를 놓지 않았던 게 기억나요. 아내에게 말했어요. ‘평소에는 몰랐는데 당신이 간다고 생각하니 미치는 줄 알았어.’ 아내는 힘든 와중에도 한마디 하더군요. ‘그래? 평소에는 왜 몰랐지?’”
    경아 씨는 자녀들에게도 잊지 않고 말을 남겼다. “이번에 너희가 나에게 보여준 존경과 사랑과 신뢰를 확인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어. 늘 얘기했듯 너희들 덕분에 내 인생은 너무나 충만했어. 내 인생을 빛나게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너희를 못 보게 되는 게 죽을 때 가장 마음 아픈 거야.”
    종호 씨가 찍은 임종 영상 속에는 아내에게 한마디 한마디 꾹꾹 눌러 전하는 그의 목소리가 담겼다. “경아야, 너무나 고마웠어. 이렇게 과분한 사람과 살 수 있었던 나는 너무나 행운아였어. 아프게 했던 것들 미안해. 용서해줘. 더 사랑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간절한 순간이 오기 전에 최선을 다해 사랑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이제 걱정 말고 빛을 따라 주님께로 자유롭게 떠나. 우리랑 다시 만날 때까지 행복하게 지내고, 우리 도착하면 환영해줘.” 안정제로 재워 놓은 경아 씨가 눈을 뜨고 애써 남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반응을 했다. 
    김종호 씨가 모든 과정을 SNS에 올리게 된 건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손을 내민 행위였다고 했다. 상황의 심각성, 긴박성, 아내에 대한 애정,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맞물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반향이 있었다. 글을 나눠주어 고맙다는 말을 한 이들도 있었다. 그중 한 분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장례식장까지 찾아왔다. 9년간 암 투병을 하며 매우 힘들게 살아온 분이었다. 종호 씨가 올린 고통의 글들이 본인에게 위로가 됐다고 했다. 종호 씨는 말한다. “글쓰기는 내가 살고자 손 내민 거였는데 다른 분께 유익이 됐다는 게 고마울 뿐이에요.” 

    김경아를 빼고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

    경아 씨가 남긴 유산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살아내고 기록했던 것이에요. 아내가 세상에 남긴 것 중 책들이 중요한 울림이 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책도 그럴 거고요. 아내는 ‘고통과 죽음’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 했는데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났어요. 제가 유고를 정리했지요. SNS에 올린 제 글을 부록으로 덧붙여서, 떠나는 과정 전체를 완결하는 글이 됐어요.” 많은 사람들을 자기 삶에 초대해서 같이 먹고 삶을 나눴던 사람, 세 자녀가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키운 사람, 결과적으로 부모보다 나은 세 딸을 남긴 사람. 이 모든 것이 김경아 씨의 큰 유산이었다.
    앞으로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경아 씨의 말이나 생각, 태도, 일화에 대해 물었다. “아내는 웬만한 남의 말은 안 듣는 고집쟁이였어요. 그런 아내가 하나님의 뜻에는 순종하는 걸 보고 그의 위대함을 느꼈지요. 아내는 아이 둘을 키우며 매번 체중이 10Kg씩 빠질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둘째 낳고는 더이상 출산은 없다고 했던 아내에게 입양을 제안했죠. 아내는 이 문제를 놓고 씨름했어요. 한 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한번 사는 인생을 주님 뜻을 따르며 사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하룻밤 만에 마음을 정하고 셋째를 입양하게 되었죠. 지금 돌아보면 나야 철이 없고 아이가 좋아서 했다지만,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안고 사는 아내에게는 자기를 내어주는 결정이었어요.“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앞으로 아내를 기리기 위해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종호 씨는 담담하면서도 눈물 어린 답을 했다. ”가까운 숙제인 책 정리는 80 퍼센트 정도 끝난 것 같아요. 출판사에 넘겼으니 두 달 안에 독자를 만날 거예요. 그 책이 아내의 마지막 메시지로 많은 독자를 만나기 바라요. 아내가 떠나고 난 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봤는데... 나는 김경아를 빼고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아내가 남긴 유산이 내 삶인 것 같고, 아내가 못다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런 선택이라 생각해요.“
    김종호 씨가 SNS를 통해 아내의 상황을 전할 때마다, 수십 개의 댓글과 수백 개의 공감 표시가 순식간에 달리곤 했다. 보이지 않는 기도의 벽이 이들 가족을 에워싸는 것 같았다. 임종 과정은 온라인상에서 장엄한 대서사시를 이루었다. 김경아 씨는 불꽃처럼 살다 죽음도 그렇게 맞았다. 시신 기증을 마친 후 그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뒷글

    김종호 씨를 인터뷰하기 전날 밤, 나는 생생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 큰 집으로 이사 가서 청소하다 선반 위를 올려다보는데, 아니, 저게 뭔가? 은색으로 반짝이는 큰 솥 하나가 떡하니 선반에 얹혀 있었다. 저 솥을 어떻게 처리하나 고민하다 잠에서 깼다. 꿈을 곱씹어보니 경아 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 선물이에요. 아시죠? 요리는 음식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거. 뭐든 큰 솥에 담아 만들어보세요.” 꿈이지만 내게 솥을 선물하다니! 유머는 그의 주된 특성 중 하나였다. 
    어느 노랫말이 떠올랐다. '소중했던 내 사람아 이젠 안녕/ 찬란하게 반짝이던 눈동자여/ 사랑했던 날들이여 이젠 안녕’. 비로소 그의 임종을 받아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안에 녹아든 김경아를 다시 만나기 위해, 용기 내어 길을 가기로 한다(사진 제공 : 김종호 님).

    ※ 고(故) 김경아 님을 추모하며,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김종호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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