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우리의 만남은 인천 서구에 있는 불로 대곡동 행복센터에서였다.
작년 여름, 이상기후로 무더위가 극성을 부려 지루했던 더위도 막 숨 고르기에 들어가 가을의 정취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때였다. 나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동네 주민센터를 방문했다.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사회의 관심사로 센터 안 장의자에 앉은 서너 명의 노인들의 대화의 열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어떤 중년 남자가 ”어르신들이 문제야“ 라며 지나가는 말로 하는데 “나이 많이 먹었다고 다 그렇지는 않아요. 나는 그 사람들과는 같지 않아요”라며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말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몸이 많이 불편해 보이는데도 웃음소리가 맑고 명랑해 보였다. 그래서 눈여겨보게 되었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안목을 가진 할머니가 있었구나.' 나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반가웠다.
우리 동네에는 차 없는 거리가 있어 많은 주민이 나와 걷기 운동을 한다. 산책길에서 그 분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나는 호기심으로 자연스럽게 그 분과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그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한 편의 드라마를 듣는 것 같았다. “자서전을 쓰고 싶지 않으세요? 제가 써 드릴 수 있어요.” 나는 자서전을 권유했고 그 분도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자서전 작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소원노트를 가지고 시범을 보이기 위해 내가 먼저 작성하면서 안내했다. 칸이 적어서 다 적을 수가 없다고 해서 새 노트를 주면서 여기에다 쓰고 싶은 말 다 써서 가지고 오라고 했다. 노트를 가지고 간 김경자님은 5페이지 분량의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적 잘 작성해서 오셨다.
당신의 자서전을 쓴다는 자부심으로 과거의 어렵고 힘들었던 자신의 생활상을 상기하면서 술회하는 모습에서 나도 눈물을 같이 흘리면서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현재 김경자님은 일주일에 3번, 그러니까 이틀에 한 번 꼴로 신장투석을 꼭 받아야만 생활을 할 수 있는 분이다. 물도 정해 놓은 량 밖에는 마실 수가 없으며 섭취하는 음식물에도 제한하는 게 너무 많아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새벽기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미끄러져 고관절과 팔과 다리뼈를 심하게 다쳐 여덟 곳이나 수술을 했기 때문에 허리는 굽어져있고 걸음거리도 불편한 상태로 잘 걷지도 못하시는 분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상인이 무색할 정도로 활기에 가득차 있어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부지런함과 모든 면에 용기와 의욕이 넘치신다. 이 세상에 당신이 살아 있음을 경이롭게 여기며 감사와 즐거움으로 재미있어하는 모습이 마치 초등학생이 부모에게 칭찬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김경자님은 책 읽기를 좋아하다고 했다. "아 그러세요? 요즈음에는 무슨 책을 읽으세요?” 물어보니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사 놓기는 했는데 잘 안 읽혀져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책 속에 푹 빠져 하루 이틀 사이에 감명깊게 독파를 하고 이어령 선생의 어록들을 많이 인용해서 사용하고 있던 터라 무척 반가웠다. 그래서 “나도 우리 집에 그 책이 있으니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읽으실래요?”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두 사람의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물론이고 이화대학 교목이셨던 김흥호 목사님의 ‘설교집’ 두 권을 읽었다. 현재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인류역사’를 거의 다 읽어가고 있고, 앞으로 읽을 사마천의 ‘사기’를 구입해 놓고 있는 중이다. 책을 읽는 중에도 김경자님이 어찌나 재미있어 하고 신나하는지 나도 더불어 책 읽어가면서 설명해 주고 해석해 주는 재미에 푹 빠져 생활의 활기를 되찾고 있다.
김경자님이 책을 읽으면서 감명을 토로한다.
“나는 초등학교만 겨우 나와서 그동안 아이들과 먹고사는 일에만 열중하느라 이런 공부를 할 기회도 없었고 한 적도 없어요. 못 배워서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이런 말을 듣고 공부하고 있는게 꿈과 같이 황홀해요. 이런 말을 저 혼자만 듣는것이 너무 아까워요. 우리 교회에 오셔서 우리 교우들에게도 좀 알려 주세요. 우리 교회에 오시면 기타도 섹스폰도 배울 수 있어요.”
김경자님이 나에게 제안을 했다. 나는 집에서 왕복 4시간 정도 걸려서만 갈 수 있는 덕수궁 옆에 있는 ‘성공회 주교좌 교회’엘 나가고 있다. 주일마다 출석하기가 불편해서 자주 유튜브를 통해 감사성찬례를 하고 있었다. 김경자님의 유혹(?)으로 바로 눈앞에 있는 작은 교회에 관심 가는 것은 당연했다.
동인교회 목사님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목사님께 김경자님과의 관계와 나의 종교 철학을 설명하고 내가 본 교회를 출석 못 할 경우 동인교회를 출석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요즈음에는 1부 예배는 동인교회에서 드리고 바로 달려가 본 교회의 2부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실정이다. 동인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면서 나의 생활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기타와 섹스폰을 배우는 재미로 나의 하루는 즐거움과 보람으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우연한 기회에 만나 구술자서전이 매개체가 되어 참된 우정을 과시하면서 서로 자기 것으로 나누며, 서로 발전하면서 삶의 도정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나의 생활이 이렇게 변했듯이, 처음에 내가 받았던 인상과는 너무나 달라진 김경자님의 찬란한 모습에서 나는 또 한번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해 깊은 감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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