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왜 대구에 내려갔을까요?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 정경숙 소장을 처음 만난 것은 5월 7일(화) 오후 보문로 사무실에서였습니다. 5월 5일(일) 어린이날부터 봄비답지 않게 굵직굵직한 비를 뿌리더니 인터뷰 날에도 비가 오는 제법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 소장이 혼자 앉아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첫 인상에서 중년과 노년이 함께 엿보였습니다(정 소장은 올해 75세입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분명 노년임을 보여 주는데 분위기는 훨씬 더 젊게 느껴졌습니다. 알 수 없는 분위기에 홀린 것일까요? 2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도 대구에 내려가 한 번 더 정 소장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5월 31일(금) 대구에 내려가 정 소장과 두 번째 만남을 가집니다. 왜 대구에 내려갔을까요?
생명에 대한 관심과 죽음교육에 눈뜸
경상도 사투리와 약간 빠른 말투로 정 소장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대 기독교학과 열혈학생 정 소장은 학과 학회지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이른바 ‘운동권’이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라인홀드 니버를 공부했던 그는 기존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와 함께, 나아가 ‘생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믿게 된 그에게 훗날 강의도, 환경운동도, 여성운동도, 노인교육도, 죽음교육도 모두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되었습니다.
27세 되던 해, 대구로 내려온 정 소장은 대구산업정보대학(현 수성대학교) 유아교육과 대학교수를 역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계명대에서 다시 석·박사과정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삐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 근거한 석사논문 ‘아동의 죽음에 대한 개념획득과 인지적 발달과의 관계’와 박사논문 ‘아동의 보존개념 발달수준과 죽음에 대한 정서경험수준이 죽음의 개념발달에 미치는 효과’로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논문을 준비하면서 그는 외국의 경우 아동의 죽음준비교육이 잘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한국사회에서의 죽음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죽음교육이란 바로 ‘생명의 존엄성을 알게 해 주는 것’,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정 소장은 강조했습니다. 이후 그는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Earl A. Grollman 지음)를 번역하기도 했으며, 이 책은 지금도 그의 웰다잉 강의에 자주 등장합니다.
대구 최초의 웰다잉 교육, 웰다잉연극단 창단
2003년 대구에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가 세워졌습니다. 2005년 창립 2주년 공개강연회 ‘아름다운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500석 규모의 대구은행 대강당을 꽉 채웠습니다. 연구소는 살맛 나는 인생을 위한 길목시민아카데미(1회~3회), 중·노년 교육지도자과정(1기~19기)도 개설, 운영합니다. 2007년에는 대구 최초로 웰다잉교육(죽음준비교육) 전문지도자 과정을 개설하였는데 올해 32기를 배출했습니다.
이후 연구소는 또 한 번 최초의 역사를 쓰게 됩니다. 바로 2010년 대구 최초의 웰다잉교육을 위한 ‘해너미연극단’을 창단한 것입니다. 대구 시민들이 모여 극본을 만들고 연출을 하고 순회공연을 했습니다. 대구 달서구 복지관 강당에서 창단 공연을 한 이후 지금까지 75회 공연을 했는데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현재는 휴지기 상태입니다. 이후 연구소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쓰기, 사전장례의향서 작성 캠페인, 생애말 돌봄을 위한 소원노트 쓰기 등 다양한 웰다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보건복지부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주최 지역문화활동지원공모사업에도 당선되고, 2021년 연구소 독서동아리 ‘아난다’(‘황홀’을 뜻함)가 책읽은 사회문화재단의 <독서동아리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중·노년교육과 죽음준비교육의 만남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는 여느 웰다잉교육기관과 다른 차별점을 갖고 있습니다. 기관의 이름에서도 분명하게 ‘중·노년’을 앞세운다는 것입니다. 정 소장은 중·노년을 후기 인생으로 표현하며 살맛 나는 후기 인생 계발을 위한 교육과 웰다잉준비교육 강사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접목시키는 것이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 교육의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심리치료사, 미술치료사, 집단상담가 등 전문강사진으로 이루어진 ‘노인교육 전문지도자과정’, ‘살맛 나는 인생을 위한 길목 아카데미’, ‘죽음준비교육 전문지도자 양성과정’ 등은 모두 중년부터 노년까지 자아를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입니다.
사실모와의 연대
홍양희 공동대표가 각당복지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던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던 정 소장은 사실모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전문상담사 양성교육을 받으러 서울을 오가는 등 긴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과거 그는 사실모 이사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정 소장과 정수정 강사는 구술작가이기도 하며, 올해 보건복지부 지원사업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 소장은 홍양희 공동대표에 대해 강한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웰다잉 1세대이면서 동갑내기인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참 소중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처음이 익숙한 사람’ 정 소장의 현재와 꿈
정경숙 소장은 대구로 내려간 5월 27일(금)에도 수성구 범어도서관에서 그의 역서 『아이와 함께 나누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교재로 한 웰다잉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맨 끝 좌석에서 바라본 정 소장은 영락없는 교수, 교육자입니다. 현재 그는 영남이공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도 웰다잉교육(죽음준비교육) 전문지도자 과정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칠성교회, 평강교회, 성당 등 종교기관, 경로당, 시민대학 등에서 활발하게 웰다잉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교수 퇴직 후에는 경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정 소장을 부르는 호칭은 정말 다양합니다. 그는 'EM마니아' 환경운동가이며, '동북아 생명누리협동조합' 자문위원, 노숙자 등을 지원하는 단체 ‘거리의 천사들’ 월간지 '길벗' 자문위원, ‘함께 하는 주부모임’을 운영하는 여성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장묘문화에 관심을 갖고 안동에 자연장을 조성한 작은장례문화실천운동 전문강사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정 소장이 요즘 갖고 있는 꿈이 있습니다. 정 소장은 최근 웰다잉 관련 자격증이 남발하고 있는 분위기를 비판하면서 죽음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한국죽음교육협회가 제대로 강사 양성을 위한 교육을 해야 하고 나아가 죽음교육이 공교육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그가 협회 부회장직을 수락한 이유입니다. 그는 또한 ‘노인을 위한 교육’이 아닌 노인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노인에 의한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말합니다. 잠시 멈췄던 해너미 연극단도 부활시키고 제대로 된 애도상담도 교육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제 잘하는 후배들이 있으니 은퇴하겠다, 후배를 키워야겠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 소장의 꿈은 끊임이 없습니다. 처음이 익숙한 정 소장은 분명 소중한 웰다잉 자산이며 인생 멘토입니다.
이끌림과 감사
대구를 방문한 날, 마침 연구소에서 돌봄 소원 배달학습 프로젝트 돌봄 리더들이 모였습니다. 50대부터 80대까지 돌봄 리더들은 사실모에서 보내 준 자료들을 확인하고 할 일들을 논의합니다. 그들에게 “나에게 웰다잉이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현재를 잘 살아가게 하는 힘’, ‘신앙의 완성’(이 분은 목사님으로 사실모의 ‘세이레’ 프로그램명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선물’,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웰다잉을 알게 된 지 몇 년이 안 된 새내기에게 웰다잉 선배들의 답은 언제나 무겁게 다가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정경숙 소장 일행과 대구 투어(수성못 산책)에 나섰습니다. 짧은 시간 서울 촌놈에게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서 따뜻한 환대를 느끼게 됩니다. 정말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정 소장님, 그리고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이제, 굳이 왜 대구에 내려왔을까?하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끌림’입니다. 웰다잉1세대 정경숙 소장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저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5월은 감사의 달입니다. 초고령사회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서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어린이들에게 감사하고, 보살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배움을 주신 스승님에게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대상에 하나를 추가해 봅니다. 바로 웰다잉 선배님들입니다. 죽음이라는 단어마저 금기시했던 한국사회에서 치열하게 웰다잉을 이끌어 오신 선배님들, 정말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제공 : 아름다운 중·노년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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