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자서전은 드라마틱한 삶을 표현하는 글이 아니라 들풀 같은 삶을 담는 것입니다.
심명성 선생님은 2021년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라는 제목으로 구술자서전을 남기셨다. 선생님은 1950년 백일이 막 지날 무렵 부모님과 함께 평양을 떠나 서울 중구 필동에 정착하셨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부모님 아래서 12년 동안 성북구 안암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졸업 후 무역회사에 취업했다. 근무 중 인생귀인 파울로 첼라이를 만나 스카우트(Scout)를 받아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989년부터 2011년까지 에스프리, 폴로 등을 런칭하며 CEO의 삶을 살았던 성공한 사업가였다.
인생후반기였던 2014년 망막색소변성증을 진단받고 얼마 후 시력을 잃게 되었다. 실명 위기로 20kg이상 체중이 감소했고 1년 동안 극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추락했던 신앙을 회복하며 일상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에 매진했다.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에 등록하여 기초재활을 시작으로,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독립보행과 점자를 빠르게 습득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들은 이루어야 할 과업 수행하는 목표로 부지런한 행보를 이어가고 계셨다. 2023년 5월 시각장애인용산지회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뵈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바쁜 일정들을 보내고 계셨고 근황과 구술자서전 소감 등을 여쭈어 보았다.
Q 선생님, 바쁜 일정 가운데 1주일은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A 월, 수, 금요일은 합창 연습을 합니다.
노원시각장애인복지센터에서 창단된 합창단에서 합창연습을 합니다. 처음에는 시각장애, 발달장애, 지체장애 35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14~15명이 연습하고 장애인의 날이나 구청에서도 공연하기도 합니다. 곡명은 성가곡이나 이태리 가곡과 가끔은 베르디의 오페라 곡 중 ‘대장간의 합창’, 해바라기의 노래였던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등 다양한 곡을 연습해서 공연합니다. 제가 맡은 파트는 베이스입니다.
그리고 화, 목, 토요일은 무역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초동 소재 무역회사에서 직원들 대상으로 영어회화와 무역영어를 2019년부터 2023 현재까지 주3회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역영어 실무. 실무기본 방법, Approach, contac, terminal 사용방법 등을 아침 10시~1시까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Q.이 외에도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요?
A.컴퓨터 강의와 점자 강의를 몇 개월간 했습니다.
창전동 신천(잠실)에 소재한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니어반 컴퓨터 강의를 했는데, 수강생들이 복습을 안 하셔서 진도 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어 매일 매일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오래 진행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용산지회에서 점자 강의를 했습니다.
최근에는 음성 사용이 많아 점자 사용이 많이 감소했지만 쓰기와 읽기를 위해 배우고자 하는 수강생이 있지만 인내력 부족으로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쓰기에 이어 읽기까지 이어가지 못하면 쓰기도 곧 잊게 됩니다. 쓰기의 기본이 끝나면 편한 음성지원 앱(App)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과정을 다 마치지 못하고 3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점자시험도 음성으로 컴퓨터로 치르게 됩니다. 단, 자판배열은 점자가 없어 자판을 외어서 시험에 응시해야 합니다.
Q.구술자서전이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A. 자서전 작업을 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월남참전, 회사입사와 사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심이라 확신하게 되었고, 바람은 나머지 시간도 하나님 뜻에 합당한 믿음의 삶이되길 바랍니다.
Q.구술자서전을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결정을 못 하신 분께 권유의 말씀이 있다면.
A.자서전은 드라마틱한 삶을 표현하는 글이 아니라 들풀 같은 삶을 담는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남에게는 큰 일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주는 효과는 생각 그 이상이 되기 때문에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면 듣는 사람에게는 어떤 반향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또한 과거를 회상해 가면 마치 고구마 줄기처럼 다 따라 올라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구술자서전은 자신의 삶이 사소하다 여겨질지라도 용기를 내서 해야 합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세울 만한 업적이 없다고 생각하기보다 나름대로 살아온 자기 인생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서전을 통해 자기의 재평가, 재발견이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 왔을까?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의 철학적 물음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묻는 시간과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Q.구술자서전을 위해 작가나 편집진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A.구술 작가가 대상자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면 어떤 이야기든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만약 작가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게 된다면, 대상자의 바닥을 끌어낼 수 있는 계기를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런 계기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작가의 몫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혜의 왕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기 전에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따라서 작가의 가장 큰 덕목은 경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상자에게 짧은 시간이라도 공감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혹 마음 문을 열기 어려운 대상자가 있을지라도 그 사람이 변하기보다 그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작가가 다가가서 들어주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상자의 “자기서기”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를 주는 작가가 필요합니다. 대상자를 세워주기 위해 대화와 소통이 구술 작가의 일관적 태도로 지속된다면 의미 있는 자서전 작업이 될 것입니다.
Q.구술자서전의 간접적인 영향은 자서전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고 노년의 삶을 질을 높이는 목적도 있습니다. 노년에 온전한 “자기살기”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첫째, 원론적이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지 말고 새로운 일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나이와 상관없이 생각이 젊은 분이 많습니다. 나이에 집착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이 없다면 남은 시간은 막연한 기다림의 연속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둘째, 삶의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생각나는 것, 막연하지만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놓치지 말고 메모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셋째, 사회적 지원을 막연히 기다리지 않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사회적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공공의 모임이나 동호회에 참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지역에 있는 노인복지관에 참여하고 얻는 것을 자기화하면 사회적 혜택과 지원은 자기 활성화와 자기서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터뷰 동안 에너지가 넘치시는 선생님을 뵈며 건강한 삶의 비결을 얻어가는 느낌이었다. 또한 구술자서전 사업을 진행하는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에 당부의 말씀도 남기셨다. 구술자서전을 통해 비슷한 아픔이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소그룹 활동을 통해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성화하는 역할을 부탁하셨다.
심 명성선생님은 구술자서전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다시 도전하는 삶을 살아내셨다. 우리 사회에 온전한 ‘자기서기’가 확산되고 정착되길 바라시는 그 염원을 실어 변화의 바람이 이곳에도 불어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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