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제주는 참 이상하다
이번 제주행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퇴직하는 남편 위로 여행, 대학 동창 카페 창업 축하, 그리고 사단법인 제주웰다잉문화연구소(이사장 현파 스님) 탐방 취재 때문입니다. 공과 사가 뒤섞인, 단순한 힐링 여행이 아니었지만 제 마음은 해외에 가는 것처럼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요즘 뜨고 있는 맛집, 핫플레이스를 열심히 검색합니다. 출발 전날까지 캐리어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저는 영락없는 제주도를 처음 가는 여행자 꼴입니다. 매해 가는 곳인데도, 다른 곳을 갈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이렇게 설레게 하는 제주도는 참 이상한 곳입니다.
제주에 미친 사람들
제주 도착 후 이틀은 남편과 함께 제주도를 돌아다녔습니다. 남편이 제주 최대 명소라고 꼽는 서귀포 중문의 한 카페를 찾았습니다. 카페 바로 코 앞에서 제주의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이런 맛에 제주에 오나 봅니다.
그 날 저녁, 숙소인 친구 집으로 들어선 순간 집안이 왁자지껄 소란스러웠습니다. 친구가 올레길 친구들을 여럿 부른 모양입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보는 분들이었습니다. 남편과 나는 금방 분위기에 적응하며 이들과 함께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남편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까지 가봤던 곳 중, 해외와 국내를 포함해서 어디가 제일 좋은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한 명씩 답을 합니다. “제주요”, “제주 하늘이요.” 남편이 다시 물어봅니다. “아니 해외도 포함해서요!” 남편은 믿겨지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그들은 다시 말합니다. 그 어떤 곳을 가더라도 제주 하늘과 바다와 숲이 그립고 좋았다고요. 즐거웠던 만찬이 끝나고 그들과 헤어졌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남편이 중얼거립니다. “모두 제주에 미친 거 같아!”
(사진 : 지난 2024.6 제주불교신문과 인터뷰하는 모습. 출처 : 제주불교신문)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
다음 날 제주특별자치도노인복지관 관장실에서 (사)제주웰다잉문화연구소 이사장인 현파 스님과 곽은진 사무국장을 만났습니다. 현파 스님은 제주특별자치도노인복지관 관장이기도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부드러운 미소로 현파 스님은 직접 커피를 내려 주셨습니다. 긴장감이 커피 속에 사르르 녹아졌습니다.
제주가 고향인 현파 스님은 고 3때 병으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였습니다. ROTC 장교를 꿈꾸던 청년은 큰 수술을 받고 병원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옆 침상 전신화상으로 입원했던 할머니가 흰 천에 싸여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는 삶과 죽음을 직접 느끼고 경험합니다. 그리고 졸업 후 수양 차 기거했던 절에서 다시 진지하게 삶과 죽음을 고민하게 되었고, 스무살 나이에 ‘결국 생사가 둘이 아니다.’ 이 이치를 수행을 통해 깨닫기 위해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 즉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라는 것을 그는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불교에 귀의한 후 현파 스님은 고통받고 아파하는 이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이끌어주는 데 관심을 갖게 됩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즉 보살은 위로는 불교의 지혜인 보리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고통받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자비심 실현)을 수행의 목적으로 삼고 그는 연민의 마음으로 아파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치유하는 데 집중합니다.
현파 스님은 이에 관한 몇 가지 경험담을 풀어 놓으셨습니다. 첫 번째는 1991년도 서울 남산 충정사에 계실 때 말기암을 선고받은 60대 남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충격을 받고 불안에 빠져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신장암이 다리까지 전이되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편은 모든 것을 포기한 반면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스님께 설득을 요청합니다. “살 수만 있다면 다리 하나 없는 게 문제가 될까요?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받자”라며 스님은 삶의 희망을 갖도록 남편을 설득했고 결국 그는 1차 신장 제거 2차 다리 절단 수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수술실 입구까지 남편의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다리 절단 후 남편이 다시 충격과 우울증에 빠졌지만 그는 치료를 받으면서 회복을 했고 의족을 하면서 차를 운전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스님은 병원마다 다니며 환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한남동에 거주했던 임종을 앞둔 간경화 환자 신도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남동에 5층 건물을 신축했던 만큼 삶에 큰 애착을 보였고 삶의 끈을 놓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그에게 말합니다. “내려 놓으십시오. 새로운 세계에 들어갈 시점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앞서 가는 것 뿐입니다. 좋은 인연을 간직하고 아프게 했던 감정을 털어버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임종을 맞이했고 스님은 3시간 이상 임종기도를 합니다. 가족들조차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스님은 그가 평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유족들의 슬픔까지도 위로해 주었습니다.
현파 스님은 경험담을 마무리하면서 유마거사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중생들이 병에 걸렸으므로 나도 병들어 있다. 만약 중생들이 병이 나으면 그때 내 병도 나을 것이다.” 유마거사의 마음이 곧 현파 스님의 마음이었을까요? 스님의 마음을 알 듯도 합니다.
고향 제주로 내려오다 – 호스피스와 웰다잉교육
현파 스님은 중앙승가대학과 한성대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2004년 고향 제주로 내려 옵니다. 2005년 제주바라밀호스피스회를 창립합니다. 호스피스회에서는 병원을 다니면서 임종기도와 간병기도를 통해 환자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어려운 한문이 아닌 한글로 된 의식과 노래로 기도하기도 합니다. 환자는 물론 가족들도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10주년기념 사진전도 개최했습니다. 호스피스회는 제주도내 최초로 제주의료원과 제주대학병원 내 법당을 만들고 부처님오신 날을 맞아 자비의 연꽃등을 만들어 희망과 나눔을 통해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많은 위안을 베풀고 있습니다.
그는 국립암센터에서 6개월 호스피스 고위자과정 교육을, 각당복지재단에서 웰다잉 전문강사 교육도 받을 정도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도 하게 됩니다.
현재 그는 많은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사)제주웰다잉문화연구소 이사장, 제주특별자치도노인복지관 관장 뿐 만 아니라 제주 반야사 주지이기도 합니다. 현파 스님은 반야사 공덕회를 통해 어려운 이웃과 환우들에게 지속적으로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보고 듣고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헤아려 정서적 도움 뿐 만 아니라, 경제적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 실천되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밖에도 현파 스님은 제주대학병원 공용윤리위원회 종교계 대표이며, 제주시자살예방자문단 자문위원, BBS 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양한 곳에서 웰다잉을 강의하는 웰다잉 강사이기도 합니다. 그는 웰다잉에 관심있는 대학생들의 모임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파 스님의 죽음 이해
현파 스님은 말합니다.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많은 분들이 죽음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교경전 본생경에 보면 ‘삶은 불확실한 인생의 과정이지만 죽음만은 인생의 매듭이기 때문에 엄숙할 수 밖에 없다. 그대의 삶에는 한두 차례 시행착오가 용납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에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그러므로 잘 죽는 일은 잘 사는 일과 직결된다’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죽음준비교육의 필요성이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제주웰다잉문화연구소가 가는 길
(사)제주웰다잉문화연구소는 제주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웰다잉교육기관입니다. 죽음준비교육,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교육이 대표적인 사업입니다.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웰다잉교육과 찾아가는 상담실 참가 등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지방보조금 사업으로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명존중·자살예방교육 및 삶과 죽음 시· 수필 공모전’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웰다잉교육을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다른 웰다잉교육기관과는 큰 차별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연구소는 제주도민 웰다잉강사 양성을 위해 자격증 과정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섬이라는 제주 특성상 강사 초빙도 쉽지 않은 환경이어서 그간 웰다잉교육에 어려움이 많았던 것입니다. 제주 지역에도 이제 시작되고 있는 웰다잉교육을 더욱 확산시키고 또한 후배 웰다잉강사 양성을 위한 현파 스님과 곽은진 사무국장의 의지는 매우 강력해 보입니다.
사실모와의 협력
곽은진 사무국장은 처음 사실모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 교육을 받을 때 매일 제주에서 서울로 오고 가는 강행군을 했다고 회상합니다. 매일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했던 만큼 절실했던 그 무엇이 있던 것일까요? 그때 교육을 받았던 상담사들이 연구소의 주축이 되어 현재 제주도 이곳저곳에서 의향서 등록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곽은진 사무국장은 사실모 구술 작가이기도 합니다. 연구소는 올해 사실모 제안사업인 「위풍당당한 노년의 삶을 위한 ‘돌봄 소원’ 배달학습 프로젝트」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2시간 넘는 인터뷰가 끝났습니다. 비록 아름다운 사찰 반야사는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제주라는 섬에서 웰다잉을 위해 헌신하시는 두 분이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현파 스님에게는 사회복지도, 웰다잉교육도 모두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에 다름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차가 떠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는 현파 스님을 보면서 지금은 헤어지지만 이 두 분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현파 스님과 곽은진 사무국장은 제게 어떤 인연이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현파 스님, 곽은진 국장님 다음에는 반야사에서 또 뵐 수 있겠지요?
제주에서의 일정들이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제주공항으로 왔습니다. 한 시간 연착이 되어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남겨진 많은 시간 속에서 제주에 ‘미친’ 사람들만큼 웰다잉에 ‘미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웰다잉에 '미친'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사회는 생명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바뀌겠지요?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사진제공 / 사단법인 제주웰다잉문화연구소)
사단법인 제주웰다잉문화연구소
http://www.jejuwelldying.or.kr
Tel : 064-799-1782
Email : jejuwelldying@hanmail.net
다음 카페 '바라밀 실천도량' cafe.daum.net/susangbara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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