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신축개관식에서 흘린 박미연 관장의 눈물
지난 11월 18일(월) 창동어르신복지관에서 신축개관 기념예배와 개관식이 열렸습니다. 이 날 행사를 축하해 주기 위해 홍양희 공동대표가 참석했습니다(박미연 관장은 사실모 이사입니다). 홍 대표는 박미연 관장이 인사말을 시작할 때 눈물이 흘러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주마등처럼 스치는 생각들이 있었겠구나’, ‘2년간 고생 끝에 새로운 건물을 지었으니 정말 감회가 남달랐겠구나.’ 조금은 박미연 관장의 눈물의 의미를 알 듯도 했습니다. 그런 그를 다소 쌀쌀한 날씨 속, 12월 초 신축 복지관 관장실에서 만났습니다. 안경 너머 속 부드럽지만 단단해 보이는 박 관장의 두 눈을 응시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노인복지관 죽음교육의 시작
2009년 박미연 관장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복지관 내 어르신 5명이 나들이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2명 어르신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치고 1명은 그 사고를 목격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그 복지관의 총괄과장으로 일하고 있던 박미연 관장은 응급실과 장례식을 찾아다니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르신들을 도와드리고 싶지만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 지도 몰랐고, 특히 자신 역시 ‘죽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죄송한 마음만 커졌습니다. 사고 이후 그는 컴퓨터에 ‘죽음’이라는 글자를 계속 쓰면서 다짐합니다. ‘더 늦기 전에 어르신들에게 ’죽음‘을 이야기하자’고요. 2010년, 드디어 그는 어르신을 위한 죽음교육을 시작합니다.
싸나톨로지(죽음학)를 만남
박미연 관장은 사고 이후 각당복지재단을 찾아갑니다. 당시 죽음준비교육지도자 과정을 운영하고 있던 홍양희 대표에게 참가를 요청하는데, 신청 자격이 55세 이상인 자였기에 40대였던 박 관장은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꽂혀 있던 박 관장은 홍 대표에게 참가를 호소했고 그의 절실함을 알아본 홍 대표는 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라는 특수성을 인정하여 허락을 합니다.
2017년 박미연 관장의 죽음 공부에 또 한 번 큰 획을 긋는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임병식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된 것입니다. 박 관장은 “의식이 확 틔여지는 느낌이었다”라고 회상합니다. 그는 죽음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 삶에 대한 근본적 질문, 죽음에 대한 이론적 관점을 만들어가게 되었고 초기 죽음을 공부하면서 죽음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기까지 3년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그는 현재 한국싸나톨로지협회 부회장이며 Thanatologist FT, 죽음수련감독입니다). 그리고 그의 관심은 상실과 비탄, 애도 상담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창동어르신복지관의 웰다잉사업
2012년 창동어르신복지관 관장으로 취임한 박 관장은 다양한 웰다잉사업을 추진합니다.
우선 어르신들을 위한 죽음준비교육입니다. 이 사업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정리하는 자서전, 맞이할 죽음을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과 장례, 유언 등으로 죽음을 성찰하기. 현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지원하는, ‘아름다운 황혼’(이전에는 ‘하늘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진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통합 웰다잉교육입니다.
둘째, 사별 어르신의 고통을 덜어드리고 나누는 슬픔 치유 사업입니다. 2019년부터 시작한 ‘다우리’(다시 시작하는 우리) 사별프로그램과 사별자로 구성된 자조모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셋째, 웰다잉문화조성 사업입니다. 죽음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도봉구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웰다잉카페를 만들어 월 1회 죽음을 주제로 독서 또는 영화로 진행하는 ‘메멘토모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밖에도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죽음지도자교육(민간자격증)과 웰다잉 캠페인 등이 있습니다. 2022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선정되어 의향서 상담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 ‘하늘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죽음교육을 시작할 당시 대상자 모집과정에서 하늘소풍을 놀러가는 소풍인 줄 알고 많은 분들이 신청했다가 ‘그 소풍이 그 소풍’인 것을 알고 대부분 빠져나갔지만 결국 참여한 분들이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른 분들에게 권유할 만큼 죽음교육도 활성화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죽음준비교육이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연과 사업들을 소개하면서 박미연 관장은 “지난 14년간의 지속적인 웰다잉문화조성의 영향으로 비교적 죽음을 자유롭게 말하는 문화가 조성되어 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한국 유일의 노인복지관 웰다잉연구소
2016년 박 관장은 창동어르복지관 내에 ’웰다잉연구소‘를 만들고 도봉구 웰다잉문화조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대부분의 노인복지관이 웰다잉교육을 여러 사업 중 하나로 운영하고 있는 반면, 창동어르신복지관은 아예 독립적인 기구를 설치하여 종합적으로 운영한 것입니다. 이는 박 관장이 웰다잉교육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복지관 직원들에게도 웰다잉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죽음학 공부를 권유하기도 합니다(직원들 대부분이 의향서 상담사입니다).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명료한 이해와 그를 위한 실천의 장으로 웰다잉연구소까지 설립한 박 관장의 행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차근차근 세워놓은 로드맵에 따라 죽음교육과 그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박 관장의 모습을 보면서 이론과 실천이 균형있게 잡힌 ’실천적 싸나톨로지스트‘라는 생각이 든 것은 과한 상상이 아닌 거 같습니다.
노인복지관의 역할
2019년 창동어르신복지관에서 사별 가족을 위한 다우리(다시 시작하는 우리)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의 일입니다. 2009년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르신의 배우자가 10년 만에 다우리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헤어진 남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서 그 말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털어놓으면서 상실과 비탄에 빠져있던 자신을 치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어르신의 사례입니다. 배우자 사별 후 재산 문제 등으로 자식과 단절했던 그 분은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는 더 이상 배신감에 빠지지 않고 단단해지고 적극적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매일 아침마다 메멘토 모리를 외치고 단짝 동료에게 오늘은 무엇을 하고 사는지를 묻습니다. 그는 현재 선배시민 봉사단(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79세 암이 3개나 발견된 죽음교육 참가자 어르신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는 암이 발견되었을 때 처음에는 매우 슬펐으나 “열심히 살아왔고 갈 때가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작성한 유언장을 보여 주고 소중한 물건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박미연 관장은 여러 가지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노인복지관은 우선 노인에 대해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르신은 복지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복지의 ‘주체자’라는 것입니다. 노인복지관은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자신의 삶과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공부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노인복지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어르신들을 통해 웰다잉문화를 심화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노인복지관이라는 그의 정의에서 웰다잉문화 확산을 위해 노인복지관의 자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 거 같았습니다.
인식 전환과 주체성
2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 관장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관점(인식) 전환’과 ‘주체성’입니다. 그는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고통들, 사별, 상실에 대해 ‘나의 삶도 나의 것, 나의 죽음도 나의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스스로 삶의 주인(주체)이 되어 가는 과정, 서로의 아픔에 연민과 공감으로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죽음학의 실천이라고 하면서 “사회복지사로서, 죽음교육전문가로서 사회복지를 통한 죽음학 실천이 나의 사명”이라는 박 관장의 말에서 깊은 성찰이 바탕이 된 준비된 지도자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모와의 협력
창동어르신복지관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되기 전에 사실모의 찾아가는 상담실로 운영되고 있었고 지난해에는 세이레 프로그램도 개설하여 진행했습니다. 또한 올해에는 보건복지부 제안사업에도 참가하는 등 사실모와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박미연 관장은 지난해 사실모 이사로 선임되어 제 12기 상담사 양성교육 강사로도 참여한 바 있습니다.
박 관장의 현재와 미래
현재 박미연 관장은 도봉구 창동어르신복지관 관장이면서 도봉구 초안산어르신문화센터 센터장이기도 합니다.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올해는 복지관이 도봉구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밖에 그는 나눔과 나눔 이사로, 웰다잉교육 강사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웰다잉위원회 부회장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공공기관 단체장으로서, 죽음교육전문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 관장은 내년 ‘상실을 딛고 일어서는 인문학(죽음학)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미연 관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미리 유튜브 영상, 기사, 토론회자료 등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마냥 부드러워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는 그 어느 곳에서도 꽉 찬 모습입니다. 그는 지면으로는 담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거침없이 죽음학과 관련된 명제들에 대한 그의 견해를 피력합니다.
인터뷰 끝에 슬쩍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신축개관식 기념예배 때 눈물을 흘리셨어요?” 박 관장이 답합니다. “2021년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하면서 번아웃되어 심각한 턱관절 장애를 겪게 되었고, 설상가상 차가 절벽으로 굴러 폐차되는 사고도 겪으면서 우울증과 불안을 동반한 적응장애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잘 견디어 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예상못한 눈물이 흘렀습니다...요즘 출근할 때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을 떠올리며 후회없이 살아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알고 강인할 것만 같은 박 관장도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 오늘을 애쓰고 있음을 보면서 죽음학은 현재진행형임을 실감했습니다.
사무실을 나오는 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오는 어르신들을 박 관장이 환한 미소로 맞이합니다(이전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어르신들이 무척 고생하셨다고 박 관장은 안타까워했습니다). 이곳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습니다. 창동어르신복지관 벽면에는 이러한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어르신의 건강하고 활기찬, 그리고 행복하고 존엄한 노후를 응원합니다.‘
박미연 관장님, 힘내십시오. 응원합니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창동어르신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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